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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가게] 80년 동안 단 하나뿐인 신발 만들기 - 송림수제화

By 서울간지 2017-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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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수제화는 1936년에 을지로에 개업하여 다른 가게들이 수시로 간판을 고쳐 달고 업종이 교체되는 동안에도 수제화만을 고집해 온 80년 전통 오래가게입니다. 구두, 골프화, 등산화, 특수화까지 없는 게 없으며 한국 신발 역사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 붙는 명인의 가게입니다.

 

3대 송림수제화 임명형 대표님


Q. 가게 이름이나 개업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나요?

A. 송림수제화는 1936년에 송림양화점으로 출발하였고 송림화점, 송림제화를 거쳐 송림수제화로 상호명을 바꾸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인 1933년 한국인이 운영하는 ‘상동양화점’에서 신발 만드는 법을 배운 창업주께서(이귀석 씨) 처음 기틀을 잡으셨고 그 외조카이신 아버지 (임효성 씨)께서 구두 기술 위에 새로움을 만들었지요. 



아버지가 운영하실 때는 고객이 등산화를 많이 찾았습니다. 아무래도 극한을 경험해야 하는 탐험가에게는 목표로 하는 곳의 온도·습도·기후를 토대로 만들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기성화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겠지요. 1977년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반한 산악가 고상돈 씨, 세계 최초로 3개 극지점과 7대륙 최고봉 등정에 성공항 탐험가 허영호 씨 등 유명 산악인 중에 송림을 찾는 분도 많아요.



Q. 가게를 잇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다면요?

A. 처음부터 신발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가업이라고는 해도 관심이 없었죠. 그러다가 군 제대 후 가게 일을 도왔는데 일반 가게에서는 손님이 이것저것을 따지잖아요? 그런데 우리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안 그랬어요. 아버지가 파는 건데 항상 손님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었죠. ‘이게 그저그런 신발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일을 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처음 가게를 물려받을 때는 어려움이 많았어요. 아버지께서는 어떻게 만들어야 한다는 기술을 직접 가르쳐주시지 않았었거든요. 대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기다려 주셨죠. 그게 제가 아버지에게 배운 거예요. 신발 만드는 기술을 어느 정도 알게 된 뒤에도 안 가본 정형외과가 없어요. 발을 연구하려고요. 특이한 발은 제가 다 봤지요. 그래서 지금은 수제화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발에 어울리는 신발은 누구보다도 잘 만든다고요.


송림수제화가 만들어지는 작업공간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손님이나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A. 이곳에서는 손님 개개인에게 맞는 신발을 만들어요. 조금 특이한 발 모양 때문에 평생에 걸쳐 자기 발에 맞는 신발을 신어보지 못했다는 손님, 질병이나 특별한 이유 때문에 일반 신발을 신지 못했던 손님 등. 그분들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면 이 일에 보람을 느끼곤 해요. 그런 분들 한분 한분이 모두 기억에 남지요.

어떤 일본인은 한국에 여행 올 때마다 신발을 수선하거나 새 상품을 사들고 갔어요. 또 뉴욕에 사시던 어떤 분의 신발은 그 분이 걸어 다니는 동영상을 촬영해 만들었지요. 한국 방문이 어려우셨거든요. 세어보니 신발 하나 만드는 데 6번이나 택배를 주고받았더라고요.



Q. 송림수제화의 주력 상품이 뭔지 그 인기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특별히 주력 상품은 없어요. 계절에 따라 조금 변동이 있지만 모든 상품이 주력이랍니다. 구두는 구두 나름대로 등산화는 등산화 나름대로 잘 팔리고 있어요. 30년 이상 기술자들이 무엇인들 못 만들겠어요.



Q. 그렇다면 신발을 주문 받고 만드는 게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A. 사실 백 명이 있으면 백 가지 발이 있어요. 보통 사람들은 신발사이즈가 자기 발 사이즈일 줄 알고 지내요. 260이면 260이 자기 발 사이즈인줄 알죠. 하지만 그것은 표준화된 신발사이즈이고 70억 인구 발 사이즈가 다 다르거든요. 그래서 발도 재단이 필요해요. 그걸 다시 제봉하고 3일을 굳힌 뒤 마무리를 하면 수제화가 완성되는 거죠. 여기까지 보통 7일~10일 정도의 기간이 걸리고 특수한 경우 한 달 넘게 걸리기도 해요. 이런 때에는 천 번의 손길이 필요하지요.



6·25 전쟁 직후 영국군의 군화를 개조해 국내 등산화를 처음 만들었다는 송림수제화는 88년 올림픽때 사격화를 후원하는 등 다채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신문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유명인들이 자주 찾는다는 송림수제화가 대를 이어 오래가게의 이름처럼 오래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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