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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매듭을 잇다’ 동림매듭공방 심영미 씨

By SeoulStoryMaster 2018-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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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목을 맺고 죄는 방법으로 모양을 만들어 복식이나 의식용 장식에 쓰이는 ‘전통매듭’은 삼국시대 고분벽화에서도 그 흔적을 살펴볼 수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습니다. 그런 매듭공예에 40년 세월을 바치며 작품 재현과 창작에도 게으를 줄 모르는 ‘동림매듭공방’ 심영미 매듭기능전승자는 전통을 이으며 현대를 대표하는 매듭 연구·개발에 있어 여전히 현역입니다.



시아버지에게 전수 받은 40년 매듭 공예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재동초등학교 방향으로 걸어가다 가회민화박물관을 지나 바로 우측 골목으로 꺾으면 ‘동림매듭공방’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지난 2004년 4월에 문을 연 동림매듭공방은 한복 장신구인 노리개부터 허리띠․ 주머니․ 선추․ 유소 같이 전래되어 오는 장식용 매듭과 실과 끈, 장신구까지 매듭공예를 하는 데 필요한 재료까지 총망라해 전시되어 있습니다. 오랜 시간 전승된 전통 매듭과 한옥이 한데 어우러져 그 자태가 더욱 빛나 보입니다.

“열아홉 꽃 같은 나이, 당시 이웃 어르신이던 지금의 시아버지에게 전통 매듭을 배웠습니다. 시아버님은 조선 궁중에서 매듭 일을 하신 시왕고모님에게 매듭 공예 기술을 전수 받은 분이셨어요. 그렇게 매듭을 배우다가 어느 날부터 술실 만들기까지 배워 매듭공방에서 하는 전반적인 일을 마스터했지요.” 

한국 전통 매듭기능전승자 심영미 동림매듭공방 관장은 40여 년 전 매듭과 처음 마주하던 때를 떠올렸습니다.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녀는 그렇게 매듭과 평생 인연이 되었습니다.

심영미 씨의 삶터가 된 전통 매듭 공방 ‘동림사’는 한옥 대청마루에 40여 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가내수공업 형태로 매듭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끈 짜기, 술 감기, 독머리 만들기 등 나름 분업도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매듭 수요도 끊이지 않았는데요. 만드는 대로 팔려나가니 힘든 줄 모르고 신바람 나게 일했다고 합니다.



위기 속 ‘동림사’ 이름 알려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고 했던가? 잘 나가던 공방에 예상치 못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거래처를 두고 시아버지와 동종 업계 주인 사이에 갈등이 위기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시아버님은 전통 매듭 전승자셨지만 장사머리는 없으셨어요. 거래처도 ‘신우상회’ 딱 한 군데일 정도로요. 그런데 동종 업계분과 갈등이 깊어지면서 유일한 거래처를 잃고 생계에도 어려움이 찾아 왔습니다” 

거래처를 잃은 심영미 씨는 크게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낙담만 하고 있을 수 없는 터. 그녀는 거래처를 확보하기 위해 전국 수예점에 발품을 팔았고 덕분에 ‘동림사’ 세 글자를 전국 곳곳에 알렸고 88년 올림픽 때 전성기를 맞이하였습니다.

하지만 위기는 다시 찾아왔습니다. 올림픽 이후 중국과 수교가 이뤄지고 국내에 값싼 중국산 제품이 들어오면서 매듭 공방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든 것이죠. 설상가상으로 IMF금융위기까지 겹쳐 매듭만으로는 먹고 살기 조차 빠듯해졌습니다.

“물건이 없어서 팔지 못한 적은 있었어도 물건이 있는 데 못 판 적이 없었어요. IMF 이후에도 재료(실)를 받아 매일 물건을 만들었죠. 다 팔릴 줄 알았는데…그 때 만든 물건이 지금도 창고에 있어요” 



유물재현 작업과 작품 창작에 혼신 다해 

현 가회동 북촌에 터를 잡게 된 것은 2004년 4월. 서울시 지원 덕분이었습니다. 매듭공예를 시작해 가장 어려운 시기에 이전을 하게 된 심영미 관장은 매듭공예 전시 외에도 유물재현 작업과 작품 창작에도 혼신을 기울였습니다.

지난 2007년 국새 저고리보를 묶는 ‘국새 다회’ 제작을 비롯해 이듬해인 2008년 전주 경기전 태조 어진의 장식품인 유소를 재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2009년에는 노동부가 지정하는 ‘매듭기능전승자’에도 이름을 올렸고 해를 거듭하며 심영미 관장은 각종 박물관에서 진행하는 유물 재현과 복원 작업에도 참여해 이름을 알렸습니다. 

“태조 어진 유소 재현작업 의뢰 받았을 때가 지금도 생각납니다. 바늘구멍이 없는 매듭을 해본 적이 없다고 거절을 했죠. 의뢰한 교수님이 다른 곳에서 ‘동림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란 말을 듣고 물어물어 찾아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남편이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만들어보자’고 하더라고요. 용기를 얻어 교수님께 해보겠다고 하고 시작했죠. 이 일 이후에 다른 곳과도 유소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신기술 연구․개발로 매듭 보급화에 이바지 

매듭 기술 연구‧개발에도 게으름 피우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동다회(童多繪) 중 8사를 기계화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다회 제작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시켰습니다. 동다회는 단면을 둥글게 짠 끈목(여러 올의 실을 꼬거나 짜서 만든 끈)으로 끈목은 가닥수에 따라 4사‧8사‧16사‧24사‧36사로 나뉘는데요. 이 중 4사와 8사는 동다회의 기본 조직으로 용도에 따라 가늘게 하거나 굵게 쳤습니다. 심영미 관장의 동다회 8사 기계화 성공은 매듭 보급화에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지난해부터는 전통공예 학원도 열었습니다. 북촌에 있는 한지, 염색, 단청, 탈 공방도 함께 합니다. 매듭교실은 기본 매듭을 배우고 응용작품까지 만들어보는 기본과정부터 고급매듭을 배우는 중급과정, 응용작품 중심으로 진행되는 작품응용과정까지 수준별로 나뉘어 있습니다. 보통 주1회 수업으로 진행되며 여러 종류의 매듭을 배워 일상 용품인 목걸이, 머리핀, 휴대폰줄을 간단히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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