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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만 둥이 태양이가 서촌에서 자라는 방법

By 이야기자료실 201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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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서촌에 경사가 하나 있었다. 2012년 6월23일 오후 6시18분경 인구 5000만 명 시대가 열린 한국에 이른바 '오천만 둥이'의 탄생이 서촌에서 있었다. 5천만 명, 2011년 10월, 푸른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수가 70억 명을 돌파한 이후, 70억5000만 명에 이른 세계인구의 0.71%에 이르는 수치다.  


오천만 둥이의 주인공, '김태양'이라는 이름의 서촌 주민은 서촌의 동네빵집 '효자베이커리' 유재영 대표의 딸, 유선영 씨의 딸이다. 태양이는 탄생과 함께 효자베이커리와 더불어 서촌의 자랑이자 기쁨으로 자리매김했다. 태양이가 건강하게 잘 컸으면 하는 바람, 서촌 주민만의 바람은 아닐 텐데, 서촌에서는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왜냐고? 그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보자. 

 


서촌. 조선왕조의 주요 궁궐, 경복궁 서쪽에 있는 마을을 일컫는 별칭이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을 나오면 서촌에 발을 디딜 수 있는데, 종로구 청운효자동, 사직동 일대를 일컫는다. 법정동으로 따지면 더 많다. 궁정동, 누상동, 누하동, 신교동, 옥인동, 창성동, 청운동, 통인동, 효자동 등 9개동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 그래서 골목만 돌면 동 이름이 바뀌는 곳이 서촌이기도 하다. 거미줄처럼 연결된 골목에는 그래서 숱한 이야기가 둥지를 틀고 있다. 물론 서촌은 공식적인 명칭이 아니다. 문헌 상에도 서촌은 경희궁 일대를 가르킬 뿐, 역사적으로 이곳은 서촌이라고 불릴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곳에 둥지를 튼 사람들이 스스로 있는 곳을 서촌이라고 불렀다. 


재밌는 건, 경복궁 서쪽에 있어서 서촌이라는 이름도 그럴 듯하지만, 서민들의 마을이라는 점에서도 서촌은 적당한 이름인 것 같다. 인근 유명 관광명소인 북촌은 조선 사대부의 집단 거주지였다. 덕분에 으리으리한 한옥을 북촌에서 아직 볼 수 있는데, 서촌의 한옥은 북촌과 또 다르다. 과거 조선시대, 살던 사람들의 신분이 각기 달랐다. 서촌에는 역관이나 의관 등 전문직 중인과 내관 등이 살았다. 예술가들 또한 빠지지 않았다.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도 이곳에 둥지를 틀었었다. 근대 들어와서도 명맥은 이어져서 시인 윤동주와 이상, 화가 이중섭과 이상범 등이 서촌 주민이었다. 북촌과는 시쳇말로 '등급'이 달랐던 셈이다. 


그래서일까? 서촌 골목은 친절하지 않다. 이정표가 없다. 골목길이 익숙한 서촌 주민이 아니면 골목과 골목 사이에서 길을 잃기 일쑤다. 물론, '길 잃음'이 이곳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이전에 눈여겨보지 못한 새로움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서촌이 좀 더 정겹게 느껴지는 이유라면, 세월을 덧댄 개량 한옥 덕분이다. 600채를 넘는 한옥 대부분은 1910년대 이후 주택 계획에 의해 대량으로 지어진 역사를 품고 있다. 


음, 그러니까, 서촌은 뭐랄까. 친절하진 않은데, 속정이 깊은 친구라고 할까. 알면 알수록 신비로운 여자친구 같다고나 할까. 골목골목 구불구불한 길을 걷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서촌에선, 만나는 모든 것들에게 인사하고 싶다. 안녕, 서촌. :)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오천만 둥이 태양이가 서촌에서 잘 자랄 수 있다고 말한 이유에 대해. 마을은 자신들만의 색깔을 입힌 공간과 잉여를 낳곤 한다. 서촌이라고 다를까. 이곳을 어슬렁어슬렁 거리다보면, 눈에 반짝하는 빛이 뜨는 순간이 있다. 마을 언덕길 따라 오르막에 자리한 계단, 마을 사람들이 함께 그림을 그렸다. 계단 오르기가 싫은 사람도, 그림을 따라 오르고 싶어지는 풍경이다.


아름다운 벽화도 눈에 띤다.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예쁜 그림이 그려진 벽화. 알고 보니 더러운 상태로 방치돼 있던 창고였었다. 마을 사람들, 자신이 사는 곳을 그 상태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내가 사는 곳, 내가 가꾼다! 그러니 서촌에서는 전봇대도 남다르다. 전봇대 본연의 역할로만 그치게 하지 않는다. 역시 붓질을 했다. 평범한 전봇대가 특별한 전봇대가 된 순간이다. 평범한 일상이 기적 같은 순간으로 바뀐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에 두근거림이 찾아오는 순간이다. 평범한 일상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그 순간,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마을에서는 그렇다. 이제 곧 없어질지도 모르는 생각과 사소한 일이 갑자기 빛나 보인다. 계단의 그림을 만나고, 벽화와 마주치고, 특별한 전봇대를 만나는 시간이 반짝반짝. 문득, 쓰레기 등이 버려지기 일쑤인 벽이나 전봇대에 그림을 그려놓는다면, 쓰레기 투기나 허접한 낙서로 범벅된 풍경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든다. 태양이는 그런 서촌의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자랄 수 있을 것 같다. 태양이는 그래서 좋겠다. 마을 미학이 자연스레 스며든 아이로, 마을 감수성을 품은 아이로 자랄 수 있을 테니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샘맑은 공부방. 2010년 10월, 만들어진 공부방이 위치한 곳은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2층에 있다. 북카페와 보육공간을 겸하고 있는데, 마을의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소다. '마을의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말이 있듯, 지역 자원들이 재능기부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변호사들이 마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영어강의도 하고, 근처 학교의 교사, 교수, 영화사 직원, 청와대 직원 등 100명 이상의 자원봉사 강사들이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분야의 수업을 진행한다. 역사, 창작, 독서수업 등 그 분야도 다양하다. 



뭣보다 이곳엔 부모의 '등골브레이커'인 학원이 필요 없겠다 싶다. 마을이 키우는 아이들의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학원이 아니라서 수업도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뤄지고, 아이들은 스스로 학습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샘맑은'이라는 공부방 이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태양이도 샘맑은공부방에서 마을을 체득하면서 건강하게 자랄 것 같은 예감! 샘맑은 아이가 될 것 같은 예감!


물론 이 공부방을 만드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마을공동체 품애'라는 마을일꾼들이 신뢰와 관계 속에서 일군 공간이었다. 마을의 필요와 요구를 발굴하면서 나온 우연적 필연의 산물이다. 마을복지라고 이름을 붙여도 좋을, 그럼에도 그것만으로 규정되지 않는 이야기. 그것에 대해 좀 더 말해보자.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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