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HOME > 스토리 피드

추사의 초심, 봉은사 판전 현판 글씨

By 이야기자료실 2013-01-29
5615
추사체로 유명한 김정희는 유배생활에서 그 글씨체를 완성하는데, 유배가 끝난 후 과천에 자리 잡고 말년을 보냈다. 이때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에 자주 드나들었다는데, 유홍준 교수는 2007년 봉은사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뭇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내어 지금도 상찬해 마지않는 추사의 과천 시절 작품들이란 실상 봉은사에서 쓴 것이 많다. 실제로 추사는 봉은사에 밀실을 마련하고 상주하며 작품을 제작하며 말년을 마무리했다.”  또한 그는 추사가 작품만을 위해 봉은사에 온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며, ‘해동의 유마거사’라는 평을 받고 있는 추사는 학(學)으로서의 불교학, 선학의 대가였을 뿐 아니라 진정한 재가불자였다고 말한다.

그런 추사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에 썼다는 봉은사 판전의 글씨. 추사의 수많은 작품에서 이 판전의 글씨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추사는 낙관에 “71세 된 과천 사람이 병중에 썼다”고 강조했다. 그의 마지막 글씨라고 할 수 있는데, 왜 추사는 자신의 독특한 서체가 아닌 느낌으로 이 글씨를 완성한 것일까?

부부 건축가 임형남과 노은주는 한 신문에 기고한 글을 통해 봉은사 판전의 현판을 처음 본 느낌을 이렇게 전한다. “봉은사 판전의 현판을 처음 봤을 때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아는 범위 내에서의 서예 작품이 가진 장중하고 기품 있는 필선이 아닌 듯 보였다. 무언가 어눌하면서도 거칠고 무척 큰, 마치 예전에 할아버지가 달력을 찢어 그 위에 볼펜으로 빠르게 메모한 듯한 그 글씨, 모든 획이 낱낱이 분해되어 획 간의 유기성은 전혀 찾을 수 없던 그 글씨…. 서예의 최고 대가가 최후로 썼다는 절필이 어째 저 지경일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붓글씨 공부를 열심히 한 후 다시 판전의 글씨에 마주 선 이들은 "추사가 평생을 돌고 돌아서 어린 시절 처음 글씨를 쓰던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고 마치 우리에게 최후통첩을 하듯이 써 내린 글씨"였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유홍준 교수 또한 봉은사 강연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전했다.
“판전의 글씨를 보면 마치 어린애 글씨 같은 분위기가 있다. 본래 어린애의 글씨는 아무 꾸밈없는 그저 천진한 것인데, 추사가 추구한 이 천진무구함이란 ‘단련된 천진성’이라는데 중요한 미덕이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천연스럽게 나온 것이 추사체의 내공이고 ‘판전’ 글씨의 미학인 것이다.”

유홍준 교수의 강연과 건축가 임형남과 노은주의 글을 대하니 문득 봉은사에 다시 가고 싶어졌다. 이번에는 좀 더 천천히 판전 현판 글씨를 눈여겨보아야겠다.



발췌 정리 및 사진 : 서울문화포럼
참고
1. 유홍준, 봉은사 추사특강, 2007
2. 임형남?노은주, 세계일보 2011. 3. 22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