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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낭만 있는 게스트하우스 이야기

By SeoulStoryMaster 20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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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여관에서 배운 배낭여행


2008년 여름 어느 날, 이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JAKE JAKER JAKEST 라는 제목이 붙어있었다. 내가 아는 제이크라면 1년 전 배낭여행 중 베이징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필리핀친구 정도인데 하면서 열어보니 역시 그 친구였다.


그는 한 달째 종로 어딘가에 묵고 있는데 즐겁게 잘 지내며 한국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도 말이 그렇지 돈도 별로 없는 외국인 친구가 얼마나 힘들었겠나 싶어 삼겹살이라도 사 주려고 메일에 나온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숙소를 물으니 대원게스트하우스라고 했는데 마치 그것만 들으면 누구나 알 거라고 믿는 듯 한 말투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외국인 배낭여행자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곳이었다. 서울은 대원, 경주는 사랑채 하는 식으로)


어느 날 오후 ‘당주동 OO번지’가 적힌 쪽지를 들고 종각역에서부터 물어물어 찾아갔다. 한적한 골목길을 헤매는 동안 먼지 섞인 바람이 땀으로 얼룩진 등을 가만히 식혀주었다. 한참 후, 서민형 한옥들이 늘어선 좁은 골목 한쪽에서 ‘INN DAEWON’이라고 쓰인 커다란 나무 간판을 발견했다. 바로 밑에는 조그맣게 ‘대원여관, welcome to Korea’라고 쓰여 있었다. 전통양식의 두꺼운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자 미음자(ㅁ)형 주택의 좁은 마당이 있었는데 그 위로는 둥근 투명 지붕이 있고 바닥에는 블록이 깔려있는 퓨전 한옥이었다. 마당 한 가운데 세월의 때가 묻은 목재탁자와 의자가 보이고 탁자 뒤쪽으로는 사람 키 정도 되는 화분들이 계통 없이 맞붙어 자라고 있었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사장님이 나와서 제이크는 잠깐 뭘 사러 나갔는데 금방 올 거라고 말해 줘 마당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일본인과 서양인 여행자가 끊임없이 들락거리는 그곳은 늘 북적이면서도 왠지 편안한 대학가 하숙집 같은 분위기였다.



얼마 후 돌아온 제이크를 만나보니 그는 실제로 꽤 잘 지내고 있었다. 하룻밤에 7천원짜리 숙소이지만 여행자에게 필요한 것은 다 갖추고 있었고 밤마다 마당에서 파티가 열렸으며 친구들을 통해 한국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정보도 쉽게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제이크는 심지어 그 새 창업을 하여 돈까지 벌고 있었다. 아일랜드 친구 하나와 길거리에서 인도산 장신구를 파는 일을 시작했는데 어제는 30만원 가까이 벌었다는 것이었다. ‘뭐야 이거, 나보다 잘 벌잖아.’ 우리는 족발과 과자와 맥주를 사다가 마당에서 좀 이른 술자리를 벌였다. “어이, 제이크 장사 좀 되나봐.” 하면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자연스레 또 한 차례의 파티가 시작되었다. 서로 소개하고 여행정보를 나누고 쇼핑한 물건들을 자랑하는 동안 밤은 부드럽게 깊어갔다. 겐지라는 동갑내기 일본인 친구는 얼마 전 개봉한 ‘8월의 크리스마스’가 얼마나 아름다운 영화인지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했는데 그를 통해서 알게 된 허진호 감독은 나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감독이 된다. 제이크의 동업자 알렉스는 남대문에서 인도산 장신구를 떼어다가 용인, 파주, 구리, 의정부 같은 수도권 소도시를 돌아다니며 판매하는 일이 상당히 짭짤하고도 재미있다고 했다. 조계사에서 명상수업을 받고 있다는 수전은 한국불교의 깊이 있는 생동감을 알려주고 싶어 했고 벌써 열 번 쯤 한국에 왔다는 구미코는 서울 곳곳에 숨어있는 저렴한 맛집 정보를 종이에 꼼꼼히 적어 건네주었다. 



고생하고 있을 불쌍한 친구에게 밥이나 한 끼 사려고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던 나는 어이없게도 그들에게서 매력적인 서울의 모습을 배우고 있었다. 외부인의 시선이라는 필터를 거치고 난 정보들이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이다.


당시 배낭여행이라고 하면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인생을 걸고 떠나야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던 분위기였다. 나도 비행기표를 사서 답답한 한국을 떠나야만 진짜 여행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바로 이곳에서 하룻밤 7천원으로 배낭여행이 가능하다는 가능성은 그 밤 문득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편하게 지내던 동아리 후배가 여자로 보이기 시작한 어느 순간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나는 일상 속에서 잠깐씩 여행의 맛을 보는 길을 알게 되었고 수많은 재미와 흥미로운 사람들 다른 삶의 가능성과 마주쳤으며 그 인연으로 얼마 전 ‘아무튼, 게스트하우스’라는 책까지 출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현실을 조금 다른 눈으로 보고 긍정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 후 10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 서울에는 수많은 게스트하우스가 생겨났다. 업계의 대선배 대원여관은 얼마 전 도심 재개발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폐업했지만 이제 서울에만 2,000곳이 넘는 후배들이 그 흐름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1998년 종로 뒷골목에 웅크리고 있던 허름한 게스트하우스. 그곳은 하나의 자기 완결적인 해방구가 되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서울 곳곳을 게스트하우스로 채울 씨앗을 뿌렸던 것이다.


지난 주말에는 오랜만에 연남동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밤을 보냈다. 대원여관의 투박함에 비해 널찍한 공간에 세련된 인테리어 감각이 돋보이는 그 곳은 조르륵 나가면 4캔에 1만원 하는 맥주를 살 수 있고 전화 한 통이면 내가 좋아하는 교촌 윙 반반도 배달되는 곳이다. 근처 망원시장에서 사온 고로케와 홍어무침, 햄버그 스테이크는 비싼 요리주점 부러울 것 없는 맛을 냈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출신, 나이, 세계관이 다른 여러 사람들도 그 못지않은 훌륭한 맛을 나에게 전해주었다. 회사에 다니면서 틈만 나면 좋아하는 목공일을 하고 있는데 무척 행복하다는 분, 집에서 취미로 이런저런 맥주를 만들어보다가 아예 수제맥주 사업을 시작해 보려는 분, 항해기술을 배워 요트로 유럽에 다녀온 경험이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고 고백하던 분. 흥미로운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



이제 게스트하우스는 서울을 즐기는 독특한 방식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그곳에서는 만날 일 없을 것 같던 세계가 만나고 저절로 융합하며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새로 태어난다. 그것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인간은 쉽게 맛볼 수 없는 변두리적이면서도 중심지 같은 경험이다. 


우리 모두 나름대로 힘겹게 이곳을 살아가고 있다. 매일의 일과 인간관계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 흥청거리기만 하며 살 수 있을 정도로 만만치는 않다. 그러나 거기에 그런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도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어제 당신이 길을 걷다가 힐끗 본 그 뒷골목 게스트하우스도 이 밤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위안을 선물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늦은 아침, 더부룩한 속과 깔깔한 입을 하고 연남동 투투 게스트하우스 골목을 나서며 그런 생각이 나에게 찾아왔다. 


 


  여행작가 장성민

  93년부터 총 40개국을 여행한 약사이자 여행가이자 작가

  16년 이렇게 일만 하다가는 

  17년 아무튼 게스트하우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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