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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법원, 형조 터

By 리싸 2014-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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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법원, 형조 터 



육조의 하나로서 추관(秋官)추조(秋曹)라고도 불렀다. 

의금부?한성부와 합쳐 삼법사(三法司), 사헌부사간원과 함께 삼성(三省)이라고도 불렀다. 

1392년(태조 1) 고려의 관제를 계승하여 형조를 설치하였으나 법률 행정을 담당하는 실무 관청에 불과하였다. 1405년(태종 5) 장관인 판서가 정2품으로 승격하고 1414년(태종 14) 육조직계제(六曹直啓制)를

시행하면서  형조는 실질적으로 국가 법률을 총괄하는 관청이 되었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법무아문(法務衙門)을 만들면서 형조를 없앴다. 

형조는 재판, 법 집행,
 노비 관련 업무를 담당하였다.

 법률 조항에 대해 유권 해석을 내리고, 왕이 사형수의 죄를 심의할 때 실무를 담당하였다

 지방관이 판결하였던 송사를 수리하여 재판을 진행하는 등의 상급 법원의 역할, 형률 집행과 죄수 관리 등의 업무도 담당하였다. 형조의 속사(屬司)인 상복사(詳覆司), 고율사(考律司), 장금사(掌禁司),

 장예사(掌隸司)에서 정랑과 좌랑 각 1명씩의 책임 하에 이러한 업무를 처리하였다.


조선후기에는 네 개의 속사를 각각 두 개의 방(房)으로 나누고 별도로 설치한 형방(刑房)과 함께

 9방 체제를 이루면서 형조의 업무를 처리하였다. 노비와 관련한 송사는 산하에 별도로

 장예원이라는 관청을 두어 맡게 하였다. 



자료출처 : www.cultureconten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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