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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람풍경] 그날을 꿈꾸는 그곳, 녹두거리 서점 '그날이 오면'

By SeoulStoryMaster 2018-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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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은 있으되 비전은 없는 것

맹인으로 태어난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헬렌 켈러는 위와 같이 답했다. 서울대학교 옆 대학동, 소위 녹두거리라고 불리는 이곳에 30년의 시간동안 변함없는 비전과 꿈을 간직해온 인문·사회과학 서점 그날이 오면이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인문·사회과학서점은 과거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1980년대 대학가 주변에서 출발하여, 한국 사회의 발전에 대한 모색을 담은 정치, 사회, 역사 서적들을 주로 판매하였다. 서울대학교 주변에도 전야서점, 열린글방, 광장서점 등 6곳이 넘는 인문·사회과학 서점이 있었는데, ‘그날이 오면서점은 그중 1988년에 설립된 막내였다. 하지만 1995년 전야서점의 폐업을 기점으로 녹두거리의 인문·사회과학 서점은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오로지 그날이 오면만이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조명 받지 못한 것들에 대하여

그날이 오면은 인문·사회과학의 보편성을 기준으로 책을 선정하고, 세상과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하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애씀이 담겨 있다고 여겨지는 책들을 진열한다. 오랜 역사로 인해 여전히 가치 있지만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많은 책들과 새롭게 나오는 다양한 책들을 검토하고 살펴 적합한 책들을 준비한다. 일반 대형서점이 판매부수가 많은 책들부터 눈에 띄는 곳에 진열하는 것과는 달리, 가치를 중심으로 책을 배치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형 서점에 책을 선보이지 못하는 중소 출판사들의 좋은 책들을 선별하여 일반 서점에서는 보기 어려운 책들도 이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날이 오면’과 함께한 그날들

1980년대에 설립되기 시작한 인문·사회과학 서점들은 판매하는 책의 종류에서부터 당시 학생사회 및 사회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특히, 19876월 민주항쟁 이후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하는 학회나 동아리의 활동이 매우 활발해졌다. 이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서점을 매개로 사람들이 모여 관계를 형성하고 함께 책을 읽으며 세상을 논하는 공론장이었어요.” 하지만 80년대 후반부터 민주주의의 발전,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와 같은 이유로 학생운동이 점차 약화되었다. IMF 이후에는 불안정한 한국 사회에서 안정적인 미래를 추구하는 개인주의적 경향이 학생들 사이에서 더 강화되며 학생운동은 더욱 약화되었다. 이런 사회적 흐름 속에서, 학생운동과 운명을 같이했던 인문·사회과학 서점도 그 수가 현저히 줄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주는 곳이 되고 싶습니다.” 김동운 대표가 지금까지 서점을 운영해온 것은 변함없는 꿈과 비전이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2006년부터 후원회가 결성되어 서점의 운영을 돕고 있다는 사실은 그러한 꿈에 공감하는 이들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이들은 모든 사람들이 노력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회사회적 소수자들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이러한 꿈을 가지고 외로운 길을 걷고 있는 이들에게 길을 비춰주는 등대가 되어주고 싶다는 것이것이 지금까지 그가 서점을 지켜온 이유이다.


녹두장군의 정신과 녹두거리

제가 녹두거리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것이 제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동운 대표는 중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오기 전까지 동학농민운동의 근원지인 전라북도 고부에 살았다. 그는 어릴 적부터 동학농민운동의 녹두 장군으로 알려진 전봉준 장군을 존경해왔고, 이런 의미에서 녹두거리에서 서점을 운영하게 된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고 말한다. 서점운영을 통해 보국안민(輔國安民), 인내천(人乃天)과 같은 동학농민운동의 민중적 기치를 현 시대에 계속해서 유지해나가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하나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

서점이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은 현재 보드람치킨이 위치한 곳이었다. 김동운 대표는 내년 6월에 서점을 다시 처음의 위치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그는 현재 녹두거리에서 진행되고 있는 박종철 거리 조성 사업에 참여하여 서울시와 함께 박종철 기념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박종철 열사를 기억하는 역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수많은 학생들이 함께 어울리고 소통했던 이 녹두거리라는 공간의 의미를 되살리고 싶습니다.”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한 번쯤은 읽어봤을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의 일부이다.
그날이 반드시 오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끊임없이 현실 속에서 실천하는 사람들.
이런 이들의 도전으로 우리 사회는 바로 ‘그날’에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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