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HOME > 스토리 피드

이태원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By SeoulStoryMaster 2014-10-07
3418


 

이태원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 사진 출처 : 문화콘텐츠닷컴 >


“배나무가 많이 보이는구나!”


여기저기 새하얀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올랐다. 완연히 봄이 왔다는 신호였다. 이유원(1814~1888)은 화사한 배꽃을 구경하며 천천히 걸었다. 조금만 더 가면 운치 있게 한강이 내려다볼 수 있는 ‘천일정’이라는 정자에 도착할 것이다.


남대문을 지나 오랫동안 걸어온 터라 다리가 저려왔다. 이유원은 목도 축일 겸 때마침 보이는 주막에 들어섰다. 주막은 많은 상인들과 행인으로 북적거렸다. 


이태원이 한양도성 남쪽의 첫 번째 관문이니, 사실상 남쪽 지방으로 향하는 모든 길이 이 길을 지난다고 보면 된다. 그런 고로 조정에서 이태원의 중요성을 알고 ‘역원驛院’을 설치하여, 한양을 오가는 여행자들이 쉴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그리하여 마을이 형성되었고, 주막도 생긴 것이었다.


“주모, 상 좀 내어 주시오.”


주막에 들어서 걸상에 앉은 이유원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선비, 나그네, 상인들 등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대로를 오가고 있었다. 제법 많은 숫자였다. 주모가 상을 차려오자, 이유원은 문득 궁금한 것을 물었다.


“이 곳을 왜 이태원이라 부르오?”


“그거야, 오는 길에 배나무를 많이 보시지 않으셨나요.”


“배나무, 배나무라. 오호라, 그래서 배나무 ‘이’자에 클 ‘태’자를 더하고 역원의 ‘원’을붙여서 이태원이라 하는구려!”


목을 축이던 이유원은 무릎을 탁 쳤다. 그 때, 옆 상에서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던 상인들 중에서 특히나 막걸리를 거하게 들이켠 상인이 끼어들었다.


“거 뭐냐, 내 듣기로는 조선시대에 왜놈의 아이들이 이 곳에 살아서 그렇다고 들었소.”


“아니야, 임란왜란 때 항복한 왜인들이 여기 살았다고 해서 그러는 것 같은데?”


“자네들은 영 글렀구만, 효종대왕께서 배 밭을 보고 이태원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잖아.”


취기가 오른 상인들은 자기들끼리 논쟁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말대로 이태원은 왜란 때는 물론이요, 고려나 조선 때에도 이상하게도 외국인들과의 인연이 많은 곳이었다. 


이유원은 내심 참견하고 싶은 마음에 무어라 말하려다가 말았다. 말해봤자 이상한 놈 취급당할 것이 뻔했다.


‘이제 곧 외국인들이 왕래하는 시대가 올 게야.’


앞으로는 시대가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게 세계의 흐름이 격변할 것이다. 벌써부터, 신미양요, 병인양요 등을 통해 외국인들이 수시로 조선의 문을 두드리고있었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충분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유원의 생각이었다.


이후 조선은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에 뛰어들며 수많은 일들을 겪고, 지금의 대한민국에 이르게 된다. 이태원의 미래는 이미 이때부터 어느 정도 점쳐진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이유원도 겨우 백 여 년 뒤에 이태원이 세계인이 공존하는 곳으로 바뀔 것을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출처 : 서울역사박물관, 이태원의 공간과 삶, 201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