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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방에 남은 한국의 근현대사

By 리싸 201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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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방에 남은 한국의 근현대사



1936년 어느 날, 눈매가 날카롭고 입이 야무진 청년이 보안여관으로 불쑥 들어왔다.

스물두 살 서정주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그는 구석진 방에 짐을 풀었다. 그가 온 뒤로

분위기가 비슷한 청년들이 들락거렸다. 김동리, 오장환, 김달진 등이다.

그들은 방에서 밤새 술을 마시고 문학을 논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 동인지 《시인부락》이 세상에 나왔다.


천재 시인 이상도 보안여관과 인연이 깊다. 1934년, 경성이 시 한 편으로 난리가 났다.

이상이 7월 24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한 난해시 〈오감도〉 때문이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

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라고 시작하는 시다.

시가 연재되자 신문사에는 항의가 빗발쳤다. 신문사에 폭탄 테러를 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오감도〉는 8월 8일연재가 중단되고 말았다. 이상이 〈오감도〉에서

‘막다른 골목’으로 묘사한 곳이 보안여관 주변의 통의동 골목이다.


이후 소문이 나면서 지방에서 올라오는 문학인과 예술인이 보안여관에 장기 투숙하기

했다. 화가 이중섭도 단골손님이었다. 세월이 흘러 여관영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되자,

2004년 문을 닫았다. 얼추 80년간 나그네들을 맞던 보안여관이 새롭게 탄생했다.

뜻있는 사람이 갤러리로 꾸민 것. 이곳에 가면 꼭 들러볼 일이다.

세월의 흔적과 문화의 향기를 흠뻑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자료출처 : 이야기를 따라 한양도성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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