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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을 세계에 알린 특파원의 집 ‘딜쿠샤’

By 범진아빠 201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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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청 시티갤러리앞에서 시작한 서울통통투어를 따라가다보면 옛 시청사였던

 

서울도서관 3층 옛 시장실, 기획상황실에 도착한다.

 

그런데 이곳 시장실 옆 벽면에 걸려있는  '서울파노라마' 라는 제목의 똑같은

 

흑백 사진 두점이 눈길을 끄는데 위쪽은 1929년 민충식 작가의 것이고

 

그 아래는 80년뒤인 2009년, 동일한 장소에서 촬영한 최인호 작가의 작품이다.

 

사진속에는 '조선총독부, 경교장 등' 주요 포인트들이 화살표로 안내가 되어있는데,

 

그중 북악산 사진 쪽 '딜쿠샤'라는 낯선 지명이 눈에 띈다.

 

 

 

 

  

 

독립문에서 광화문방향으로 나서는 사직동 터널 왼편 행촌동 언덕에 자리잡은

 

'딜쿠샤'(Dilkusha)는 힌디어로 매혹, 기쁨 또는 행복한 마음을 뜻하는 인도어로

 

일제치하 조선에 머물던 언론인이자 광산업자었던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

 

(Albert Taylor, 1875~1948년)가 1923년 세운 붉은 색의 2층 벽돌집이다.

 

무엇보다 딜쿠샤는 개화기 당시의 프랑스식 벽돌쌓기로 지은 이국적인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는 점과 더불어 당시 일제의 엄격한 언론통제 속에서

 

우리 민족의 피맺힌 3.1일 독립만세의 절규를 목숨을 걸고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맨처음 알린 당시 UPI통신사의 서울특파원이었던 앨버트 테일러의

 

숭고한 정신을 기릴 수 있는 역사적 장소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세브란스 병원에서 첫 아이를 출산한 앨런 테일러는

 

일본 순사를 피해 간호사들이 아들 부루스의 침대에 숨겨두었던

 

독립선언서를 발견하고, 미국을 비롯 전세계로 약소국 조선의 3.1운동을

 

외신을 통해 전세계에 알렸다고 이때문에 6개월간 일제에 의해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었다.

 

이후에도 약소국 조선을 위해 1942년 일제에 의해 추방될때까지

 

수원 제암리 학살 등 일제의 만행을 해외에 알리는 등의 노력을 하였고

 

1942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에 추방당할때까지 이곳에 살았다고 한다.

 

이후, 다시 조선에 돌아오지 못한채 1948년 숨을 거두었지만

 

그의 유언에 따라 한국의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힌,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던 파란눈의 독립운동가였다.

 

현재는 그 역사적 가치가 무색할 정도로 오랫동안 유지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쪽방촌 형태로 15가구 26명 정도가 무단점유 형태로

 

살고 있는 등 여러가지 문제로 오랫동안 서울시가 문화재 지정을 추진해왔으며

 

올해도 서울시는 다음달 문화재 지정예고를 한다고 한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독립운동가 후손을 대대적으로 찾고 있다.

 

꼭 관계부처와 협의가 원만하게 진행되어 파란눈의 독립운동가

 

앨버트 테일러의 조선사랑의 자취가 서린 딜쿠샤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길 바란다.

 

 

 

- 딜큐샤 찾아가기


  >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3번출구에서 내려 사직터널 방향으로 700M 이동하여

     아파트 재개발현장쪽 보도를 따라 사직터널위 언덕으로 올라가셔서

     커다란 은행나무(권율장군집터)를 찾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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