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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람풍경] 서울시 국악관현악단 진성수 지휘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다.

By SeoulStoryMaster 2018-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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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날씨가 화창했던 9월의 어느 날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2층에서 진성수 지휘자를 만났다.
중앙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졸업를 졸업하고 American Conservatory of Music (M.M) 졸업, 중앙국악관현악단 KBS국악관현악단 단원 역임, 정동극장 음악자문위원 역임, 국악팝스오케스트라 '여민' 지휘자, 전북도립 어린이 국악관현악단 지휘자, 이 모든 것이 서울시 국악관현악단 진성수 지휘자에게 따라다니는 꼬리표다.


비국악인인 필자의 시선에서 사람 진성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예고 1학년 때 수재였던 동기와의 실력차이에 나름대로 목표를 세운 것이 3학년이 되기 전까지 그를 이기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별보기운동을 시작했다 하는데 해뜨기 전에 집에서 나와서 별떴을 때 집에 들어가기 다수였다고. 경비아저씨가 밤 9시에 연습실을 마감하는데 연습실 마감시간을 11시까지 늘렸다고 회상하는 진성수 지휘자.
정확히 2학년 마지막 시험 때 수재인 동기보다 점수가 잘 나왔고 3학년 예술제에서 피리를 제일 잘하는 친구가 연주한다는 태평소를 맡으며 졸업할 때까지 우수한 점수를 유지했다는 소년 진성수의 모습을 들려주었다.




변화.

중앙대를 거쳐 군악대에서 피리전공으로 전역 후, 1999년에 KBS국악관현악단에 입단을 하게 된다.



2008년도 37세의 나이에 KBS를 과감히 그만두고 지휘공부를 위한 유학길을 시작하였다.
자신 앞에 붙어있는 피리 진성수를 없애고자 초심으로 돌아가 방학도 없이 1년 동안 학교를 다녔고 졸업연주회를 해야하는데 마침 국립오페라단에서 한국민화를 소재로 한 창작오페라 지휘의 건이 들어와서 남들 돈쓰고 하는 졸업연주회를 돈을 벌며 했다고 전한다.

2010년에 한국에 돌아올 때는 귀국해서 우리의 국악을 발전시켜야겠다는 마음밖에는 없었다고 한다. 성남, 안산 시립국악관현악단 등에서 객원지휘를 하면서 입소문이 돌기 시작해 2015년에 서울시 국악관현악단 공채를 통해 현재까지 서울시의 지휘를 맡고 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유학을 가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것 같다고 전하는 진 지휘자는 주변인들 모두가 말렸지만 와이프의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공연기획.

세종문화회관 등 국악공연들의 기획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비국악인으로써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물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공연기획을 하면서 아쉬운 점을 묻자 전국의 모든 시도에는 교향악단은 갖춰져 있는데 국악관현악단은 있는데도 있고 없는데도 있는 형태가 아쉽다고 전했다.
 
예술은 혼을 쏟아 부어야 하는데 자본논리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며 시민들을 위한 힐링이 수치상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쉽다고 전하는 진 지휘자는 미국이 강대국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어 설명을 이어갔다. 하버드대학교의 대학생 오케스트라가 우리나라 오케스트라보다 실력적으로 뛰어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추후 미국 유학 시절 알게 된 것으로 그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11악기를 시작해 대학교의 오케스트라까지 가려면 계속해서 실력이 걸러진다. 그리고 시카고 교향악단을 후원해주는 곳은 다름 아닌 일리노이 주라고 덧붙였다.



일반인 후배들에게 한 마디


매년 후배들은 늘어나는데 앞으로 10년이 고비라고 본다.
국악인으로 성장하려면 안일하게 작은 재주를 차지하려고 하기보다는 내실을 다지고 실력을 쌓아가기를 당부했다. 그래도 최근 몇 년 동안은 국악계 스타들이 탄생하고 유튜브 등을 통해 국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며 젊은 친구들이 진성수 지휘자가 바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해주고 있어서 기쁘다고 한다.




국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는 진성수 지휘자는 초, 중학교 방과후 수업이나 지자체마다 있는 성인 국악교실에서 일반인들도 국악을 접할 수 있는 길이 있으니 관심을 가져달라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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