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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람풍경] 디자인 간판 플레져 "우리는 간판을 넘어 작품을 만들죠"

By SeoulStoryMaster 201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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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은 가게가 건네는 첫인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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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간판 제작업체 플레져의 간판이다.


 플레져는 명실공히 한국의 철제 간판 1세대 업체다. 국내에서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철제 간판으로 서울의 면면을 꾸미기 시작하다 이제는 해외 시장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청담동, 이태원, 가로수길에 가보면 10m마다 플레져에서 만든 간판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간판을 만들었다는 여동진 대표의 말은 취재 차 사옥을 방문했던 때에 실감할 수 있었다. 인터뷰 직전까지도 여 대표는 의뢰인들과 논의 중이었으며 한쪽에서는 새로운 간판이, 아니 작품이 탄생하고 있었다.

 간판은 첫인사라는 플레져의 여 대표는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사옥에서 최근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간판에 대한 플레져의 철학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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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간판 제작업체 플레져의 여동진 대표.



"반갑습니다. 부부가 운영하는 디자인 간판 제작 업체 플레져입니다."


 인터뷰 전부터 함께 업무를 보고 있던 여 대표와 서지혜 팀장이 유난히 다정해 보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둘은 부부 사이였다.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을 물었을 때도 주저 없이 "아내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2012년부터 철제를 기반으로 한 간판을 만들기 시작했고 당시 의류 사업을 진행 중이던 아내가 플레져에 의뢰하면서 우리의 만남이 시작됐다. 첫 시작은 고객과 업자인 셈인데 수많은 간판 업체 중에 플레져의 사이트가 젊은 감각이 돋보여서 의뢰하게 됐다고 하더라."

 플레져를 창업할 당시 업계에서 굵직한 업체들과 견주었을 때 경험이 부족했지만 여 대표는 이 약점을 젊은 감각이라는 강점으로 승화시켰다. 여 대표는 국내에서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던 철제 간판 제작을 시도하며 간판은 경험 많고 나이 드신 분들이 제작한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플레져의 스타일과 맞지 않으면 계약을 하지 않았다고. 그래서일까, 플레져에서 만든 간판을 보면 하나같이 멋들어져 보였다.

 "여태 3천여 개의 간판을 만들며 특별한 작품을 보여주겠다는 가치관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우리 기준에서 예쁘지 않은 디자인을 고객이 요구할 때 1차적으로 설득해보지만 고집을 부리거나 갑질이 돌아올 경우 돈을 그대로 다 돌려줄 정도로 나름의 고집이 있었다."

 그 고집 덕에 플레져는 청와대 사이니지 제작부터 시작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세종학당 간판을 제작하며 200여 개국에 수출하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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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행사에 전시됐던 철제 부식 입간판이 사무실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간판은 가게에 걸맞은 느낌을 줘야죠.


 플레져에서 고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은 철제 부식 간판이다. 간판이 녹이 슬면 교체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인데 애초에 부식된 간판을 제작한다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50년 전통의 칼국수 가게에 갔는데 간판은 어울리지 않게 LED로 돼 있었다. 50년 된 가게라면 새것 같은 간판보다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간판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을 살려보고자 철을 부식시켜간판을 만들어보게 됐다. 처음에는 소금물로 부식시켰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우리가 1세대인 만큼 당시에는 철제 간판을 만드는 분들이 없어 해외의 사례를 찾아가며 연구한 끝에 염산이나 질산으로 철제를 부식시키는 노하우를 얻게 됐다."

 플레져를 열기 전에는 간판을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여 대표에게 간판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당시 나는 광고 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간판이 필요했던 친구에게 내 스타일로 만들어주게 됐는데 그때부터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젊은 나이였고 간판 업자에 대한 인식이 좋지만은 않았다. 노련하고 나이 많은 아저씨들이나 잘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무슨 간판이야, 나는 광고 만드는 사람이야, 하며 간판을 밀어냈지만 여기저기서 문의가 너무 많이 들어와 가게를 차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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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의 다양한 간판들.



만들면서 즐겁고 받으면서 기쁜, 그런 간판을 만들고 있어요.


 플레져(pleasure), 기쁨이라는 뜻의 영단어다. 가수의 인생은 노래 제목을 따라간다는 말처럼 여 대표 또한 회사 이름을 그대로 따라가듯 즐겁게 일하고 있었다.

 "출근하면 퇴근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그런데 나는 즐기면서 일하고 싶었다. 일에 있어서 즐거움을 지향하기에 사명도 그렇게 지었다. 단순히 간판을 달아주고 대가를 받는 게 아니라 매장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 일례로 이제 막 시작하는 음식점의 의뢰를 받고 조그만 간판을 달았는데 그곳이 미슐랭 가이드에 선정되며 승승장구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간판을 받으면 대부분 잘됐다. 나는 간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신념이 있다. 식당에 갈 때 음식의 맛이나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외관, 간판이 차지하는 비중도 적지 않다."

 잘 보이면 끝이다, 커야 한다. 간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다. 하지만 여 대표는 그런 틀을 벗어나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간판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게 진짜 간판이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보는 편이다. 가게 이름이 없는 간판부터, 2차원이 아닌 3차원 조형물인 간판, 심지어 GPS를 달아 가게 접근성을 높힌 간판까지 만들어봤다. 간판을 넘은 간판을 만들고 싶다. 빵집 간판이라면 간판에서 빵 굽는 냄새가 나는 식의 전혀 색다른 간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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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대표의 철학이 담긴 소리 나는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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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인 느낌의 간판부터 화려한 네온 간판까지, 다양한 간판들이 제작되고 있다.


다음 목표는 길 자체를 꾸며보는 거예요.


 플레져의 역사는 한마디로 마르지 않는 우물이었다. 회사를 운영하며 한 번도 고비가 없었다며 여 대표 스스로도 신기하게생각했다.

 "항상 부족한 것들이 채워졌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신기하다. 잠시 일을 보지 못하고 있어도 항상 찾아주시는 감사한 분들이 많았다. 청와대에서도 어떻게 알고 연락이 왔는지 모르겠다. 인연이라는 게 신기하게도 돌고 돌아서 올 사람은 다 오게 되는 것 같다."

 처음 목표는 사옥을 갖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목표는 지금의 사옥을 매입하고 중구 을지로에서 성동구 성수동으로 이전하며 이뤄졌다. 두 번째 목표는 플레져의 간판으로 가득한 거리를 보는 것이었는데 그 또한 이뤄졌다. 이제 여 대표가 꿈꾸는 다음 목표는 간판을 넘어선 것이었다.

 "가로수길에 가보니 내가 제작한 간판이 10m 거리마다 있었다. 그 목표를 이루니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각났다. 가로수길 같은 거리 자체를 꾸며보고 싶다. 안 된다면 골목길이라도 좋으니 길 전체를 꾸며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플레져 >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덕정9가길 12-1
홈페이지 > http://www.art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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