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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골목이 그리우신가요

By 이야기자료실 201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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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골목이 그리우신가요?

 

요즘 세대야 거의가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걸음마를 배우고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자랐으니 골목이 그리울 리가 없다. 하지만 중년을 넘긴 나이에는 가끔 정겨웠던 어린 시절의 골목이 그리울 때가 있다. 좁은 골목을 뛰어다니며 술래잡기를 했고 계단을 숨가쁘게 올라 앞서가던 친구를 쫒기도 했고, 조금 넓은 마을 어귀에서는 자치기 사방치기 굴렁쇠를 굴리며 놀았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 지친 일상 속에서도 저절로 미소가 번지는 장면들이며 다시 한 번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다면 떠나자.

 

아무리 도시가 개발되어 옛길도 옛 물길도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개발에서 밀려난 그런 곳들이 서울 곳곳에 아직 남아있어 이제는 보물창고가 되어가고 있다.

그 중의 한 곳. 오늘은 이화마을로 가고자 한다. 이화마을은 드라마에 나오는 바람에 그저 벽화를 보기 위해 외국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는 유명한 곳이 되었지만 어찌 벽화만이 전부이겠는가?

 

                            

    

그곳에는, 서울을 둘러싼 내사산 중의 하나인 낙산자락의 도성에 기대어 있는 마을로 조선시대부터 경관이 수려해 양반들이 풍류를 즐기던 동네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고급 일본인 거주지였고 광복 후에는 최초의 국민주택이 들어서기도 했다. 이화동에 국민주택이 들어선 것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계시는 이화장 부근의 불량주택 개선의 노력이라고 볼 수 있고 그 주택은 지금도 남아있어 당시를 짐작해 볼 수가 있다.

 

 

                                        

젊은이들이야 유명한 벽화들을 찾아 사진을 찍고 데이트를 하며 하루를 족히 행복하게 걸을 수 있는 동네이겠으나 그 속살을 들여다보면 앞선 세대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교육장이 되는 곳이다.

 

혜화역 2번 출구를 나와 새로 단장한 마로니에공원을 지나 방송통신대학 옆으로 올라가면 쇳대라고 쓰인 거대한 철판을 만나게 된다. 바로 쇳대박물관이다. 쇳대라 함은 열쇠나 자물쇠의 다른 말이다. 무겁고 단단한 쇠판 위에 ㅎㅎㅎㅎ라고 새겨진 웃음소리를 들으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건축물은 유명한 승효상씨가 설계를 했지만 이야기를 입힌 것은 홍익대학의 안상수교수다. 그는 한글글꼴디자인 분야에 업적이 큰 인물이다.

             

 

                          

쇳대와 웃음이라? 쇳대가 잠겨있음은 소통의 부재이지만 쇳대가 열리는 순간 소통은 시작되고 웃음꽃도 피어나리라. 우리도 옛 것과 소통하면서 이화마을을 천천히 걸어 보자.

 

먼저 지나치지 말아야 할 곳이 이화장이다. 지금은 지난해 폭우로 수리 중이라 문을 열지는 않고 있지만, 1945년 광복되자 망명지인 미국에서 귀국한 이승만은 기거할 집이 없어 안정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당시 실업가들의 도움으로 돈암장에서 이곳 이화장으로 옮겨1947년 부터 기거하였다. 그는 이곳에 살면서 정부수립 운동을 전개하여 대한민국 초대 국회의장에 당선되고, 이어서 초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이곳 조각당에서 초대 내각을 구성하기도 했다. 경무대에 있으면서도 가끔 이곳에 들러 정원과 뒷산을 산책하기도 했다고 하니 낙산에 올라 잘사는 나라를 위해 많은 생각을 했으리라....

 

1960년 자리에서 물러난 이승만은 이곳 이화장으로 이사했고, 같은 해 하와이로 망명했고 1965년 하와이에서 서거하자 이화장에 안치되었다가 727일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초대 대통령에 관한 많은 논란이 아직도 분분해 제대로 평가 받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신생 독립국가의 첫 대통령이 계셨던 집이니 충분히 의미가 있는 발걸음이다. 머지않아 수리가 끝나면 다시 살펴볼 수가 있을 것이다.

                                      

 

 

이화장에서 나와 마을 표지판을 따라 이골목 저골목을 기웃거리다 보면 정겨운 것들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마침 10년 계획을 두고 이화마을박물관이란 프로젝트로 분분하다. 7개의 마을박물관은 청자와 백자와 근사한 것들로 꾸며진 박물관이 아니라 주민들이 실제 사용했던 것들을 사연과 함께 전시하고 있다.

 

70년대 동대문시장이 활성화 되면서 가까이에 있는 이곳은 가내 봉제공장들이 터를 잡았고 재봉일을 하던 이들의 주거지가 되었다. 지금도 마을을 돌다보면 다르륵다르륵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나는 집을 볼 수가 있어 저절로 골목을 기웃거리게 된다. 그 중 한 곳에는 각양각색의 실패와 재봉틀, 갖가지 다리미와 화로 등을 전시하고 있는데 와이셔츠 깃을 다릴 때 사용하는 세살 꼬마의 손바닥 만한 다리미는 호주머니에 넣어 오고 싶을 만큼 앙증맞게 예뻤다.

 

 

                                        

조금 넓은 길 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소석갤러리는 얼마 전 이 마을에 둥지를 튼 한국화가 구지회 선생의 작업실. 작품과 함께 작업광경도 보여주고 있는데, 자그마한 선생의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탄탄한 필력을 자랑한다,

 

돌밭댁이라 불리는 마을박물관에 들르면 15세에 시집와 70여년 간 이곳에서 살아온 종갓집 며느리 돌밭댁의 3대 가족사진과 손편지 자료 가훈 등을 통해 우리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살펴볼 수가 있고 아들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편지에서 어느 시대에나 같은 아버지의 염려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창밖으로 앞의 목멱산과 옆에 인왕산이 훤히 보이는 다른 집에서는 개성있는 이화마을 주택들의 어제오늘이 사진으로 전시되고, 아직도 원형이 그런대로 잘 남아있는 국민주택이라고 불렀던 이층집에는 이화 마을이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 알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마을 박물관 몇 군데를 들러 언덕을 오른다. 하지만 힘겹게 올라갈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곳곳의 계단에는 아름다운 벽화가 있기 때문에 감상하며 올라가는 길은 마치 언덕 위의 무지개를 찾아가는 것처럼 설레인다. 파랑새를 쫒기도 하고 때로는 예쁘게 차려입고 나들이가는 귀부인이 되기도 하고 거센 물살을 거슬러 고향을 찾아가는 연어가 되어 우리의 발걸음도 덩달아 힘차게 내딛는다.

 

     

                                      

이렇듯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되어 계단을 올라가면 칠보공방을 만나게 된다. 강남에 살다가 이곳의 정겨움에 반해 쇳대박물관을 차린 최관장의 권유로 슬금슬금 예술인들이 모여들게 되었는데 김미연 칠보작가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두 해 전 이 마을에 들렀다가 연로하신 친정어머니가 더 좋아해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아름다운 작품도 감상하고 마음에 들면 작품을 구입할 수도 있고 눈앞에 훤히 뚫린 정겨운 마을도 조망할 수 있어 좋다.

 

 

                                        

공방을 지나 언덕이 끝나는 곳에는 마을텃밭이 있어 주민들이 함께 푸성귀를 가꾸기도 하고, 질펀하게 앉아 도란도란 얘기도 나눌 수 있게 쉼터가 마련이 되어 있어 배추가 속이 들었는지 안들었는지 파는 잘 자랐는지 얘기하는 마을 어른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도 곁에 앉아 귀동냥을 하며 땀을 식히고 가방에 넣어온 간식이나 물을 마시며 흐뭇한 마을의 이야기를 듣는다.

 

 

                                       

정자에 앉아 조금 쉬었다면 천천히 성곽을 따라 낙산공원에 올라가 보자. 내사산이 한눈에 다 들어오고 서울을 한아름에 안을 수 있을 것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보물찾기하듯 이화마을에 오르시라.

그대는 옹기종기 모여앉은 마을의 지붕을 바라보며 또 저 멀리 빌딩숲을 바라보며 그대가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을 찾을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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