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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에서의 어린 시절

By 뻐섯 2015-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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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에서의 어린 시절

 

 

고향은 어디십니까?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6남매 중에 둘째죠.

원래 남원에서 태어났는데, 내가 태어나기는 전북 순창군 동계면 외령리 외가에서 태어났어요.

어린 시절은 어렵게 살았죠.

농부의 아들로 태어 나가주고.

시골에서 그렇게 넉넉한 집안에 태어난 것은 아니에요.

그러다보니까 농사짓는 부모님 밑에서 이사도 몇 번이나 많이 다니고, 어렸을 때는 고생도 많이 하고.

제대로 공부도 못 허고.

우리 부모님이야 평범한 농사를 짓고 그런 분이세요.

우리 아버님 같은 경우는 마을 이장도 보시고, 그때 당시만 해도 식량이나 쌀 같은 것이 부족하다 보니까 소득 증대를 해서 퇴비 같은 것을 증산
하고, 이런 것을 어렸을 때 본 것이 어렴풋이 기억나요.
내가 보는 길에서는 실제 우리는 어려서부터 일을 많이 했어요.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때 모심기를 하면, 학교도 안 가고 집에 모충을 날라주고, 손으로 날라주고.

에 가서 풀도 베고, 나무도 하고 소 풀도 베고.

고생을 많이 했다고 봐야 되요.

어떻게 보면, 그게 하나의 자연에서 배운 하나의 교육이다 생각 되요.

요즘은 자연학습으로 간다 하는데, 여유가 있는 학생들이 자연학습을 가
는 것이고.

우리는 하나의 생존의 방법으로서.

뭐 부모들이야 자기 자식들 고생시키고 싶어서 시켰겠어요?

시골에서 어려우니까 소 풀도 베어 와라, 산에 가서 나무도 해 와라.

손도 많이 베고.

나무도 산에서 해가지고.

옛날은 다 나무를 낙엽 같은 것 채취하고 시골에서 그랬어요.

사람이 활동할 수만 있으면 다 시켜 먹었지.

농경문화에서 다 답습을 하고 살았죠.

 

서울로 오시기 전에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인자 졸업하고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농사를 지을라고 보니까 주변 약방에 취직을 시켜줘서 그때부터 약방에 있다가, 내가 사실 집을 떠나온 지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열여덟살 때부터 나왔다고 봐야죠.

그때 내 나이가 열여덟 살 정도 됐을 거예요.

우리 동네 분이 그 전주에 다른 약방에 있었는데, 그분의 소개로 취직을 했고.

원래는 꿈이 한약방에 근무를 할 때는 나름대로 한약업사 국가고시를 봐 갖고, 한약업사를 하신 분들이 많았어요.

그때 사업이 잘 됐었고.

그 한약업사를 하겠다고 그걸로 들어가서 인제 취직을 했는데, 1년간 근무를 하다보니까, 내가 근무는 영신당 건재약방에서 그동안 이 전라북도라든가, 호남 지방에서 제일 큰 건재 도매 약방에서 일했어요.


전주의 건재약방에서 어떤 일을 주로 하셨습니까?

어떻게 보면, 견습생이라고 볼 수도 있고.

지금 마냥 시대가 발달하고 이런 게 아니고, 그때는 사실 한약방이 건재를 한다고 하면 거의 노동일을 많이 해요.

뭐 거기 가서 약도 작두로 직접 썰고, 손도 많이 막 잘리고 이런 경우가
있죠.

물건도 많이 이렇게 짊어지고 다니고.

또 약재 같은 거 인제 주문 들어오면 달여서 준다든가.

경우에 따라서 또 약도 이렇게 지어서 손님 처방 나오면 지어주고. 그때는 첩으로 지어줄 때니까.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일이죠.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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