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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마르텔: 그의 젊음부터 죽음까지

By 얄뫄 2014-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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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 마르텔: 그의 젊음부터 죽음까지



근대개화기에 법어학교의 교장이라는 신분으로

우리 나라와 첫 인연을 맺은 이래로 거의 한평생을 이 땅에서 살다가

끝내 안식처까지 마련한 에밀 마르텔은 자신의 이력도 이력이지만,

그 자신이 대한제국 애국가의 작곡가이자 대한제국 군악대 악장이었던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의 사위였다는 점에서도 자주 주목받는다.


그는 정동에서 거처를 마련하였으며, 그의 집은 곧 법어학교의 발상지가 되었다.


마르텔이 자신의 집에 개설한 법어학교는 잠시 동안만 이곳에 머물렀을 뿐

학교는 이내 수하동을 거쳐 박동의 옛 육영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그곳에서 십여년 이상을 머물렀다가 다시 1908년에

일어, 영어, 한어, 법어, 덕어 등 다섯개의 어학교를 합쳐

'관립한성외국어학교'로 전면 개편하였다가

일제강점기로 접어든 직후 해산되어 사라졌다.



이에 앞서 마르텔은 명동성당에서 뮤텔 주교의 주례로 결혼식을 가졌는데,

그의 신부는 대한제국 애국가의 작곡자로 유명한 프란츠 에케르트의 큰딸로,

이들 사이에는 2남 3녀를 두었으며 맏딸인 마리 루이스는 수녀가 되어

해방 이후에도 계속 우리 나라에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진다.


일제 말기에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다.

일반적으로 2차대전 발발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1943년에 강제로 추방되어

중국 천진에 머물렀다는 정도만 알려져있으나 사실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중국에서 종전을 맞이하였고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지내던 중

서대문 자택에서 7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그는 양화진외국인묘지에 안식처를 마련하였는데, 이 곳은 장인이 되는

프란츠 에케르트의 묘지와는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이며,

그의 묘지석에는 간략히 "R.I.P.(고이 잠드소서)"라고만 새겨져 있다.

우리 나라와는 무려 50년이 훨씬 넘는 긴 인연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짧고도 함축적인 한 마디가 아닐 수 없다.


출처 : 문화콘텐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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