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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추억 #2] 잠두봉이 절두산으로

By 서울사람2 2016-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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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들이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미니스커트에 선글라스, 나름 한껏 멋을 부렸습니다. 언제 적 사진일까요? 찢어지고 해진 사진귀퉁이가 적잖은 시간의 흔적을 말해 줍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니 왼쪽 테두리에 ‘1972. 8’ 이라 찍혀있군요. 19728월 한여름 때의 사진입니다. 벌써 44년 전이네요.

 

서울 어디 일까요? 멀리 다리가 보이는 걸 보니 한강인 듯합니다. 강가에는 절벽이 있고, 절벽 가까이에는 번듯한 건물도 있습니다. [서울 추억#] 두 번째 장소는 양화진입니다.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절두산으로 더 잘 알려진 천주교 성지지요. 사진을 꼼꼼히 보니 이곳이 양화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비석에 양화진에서 치명하신 분들이라 새겨져 있습니다. ‘치명 致命은 가톨릭에서 순교를 말합니다.

 

이들은 같은 직장의 동료들입니다. 회사는 성산동에 있었는데, 스웨터를 만들어 수출하던 작은 회사였답니다. 봉제인형과 가발, 신발, 의류 등은 우리나라의 대표 수출품이었다는 거 아시죠? 1972년이니까 이제 막 정부에서 중화학공업에 드라이브를 걸 때입니다.

일과시간에 단체로 나온 걸 보니 아마도 휴일이었겠네요? 아가씨 4명이 다소곳하게 앉은 사진은 가장 왼쪽에 있는 아가씨가 사진을 살렸네요. 그녀의 뜬금없는 포즈에 분명 친구들은 한바탕 웃으며 수다를 떨었을 것입니다.

 




양화진으로 가는 합정역 7번 출구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 입구-1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 입구-2

 

양화진으로 가려면 지하철 2, 6호선 합정역에서 내립니다. 합정역 7번 출구로 나와서 좌측으로 꺾어 당산철교를 따라 400m정도 내려가면 됩니다. 양화진은 실로 한국 기독교의 성지라고 할 만합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수많은 천주교도들이 이곳에서 순교를 했으니 한국 천주교의 최대 성지인 것은 물론이고요, 이곳은 또한 개신교의 성지이기도 합니다. 절두산 순교성지 100m 전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는 145명의 외국인 선교사와 그의 가족들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언더우드(1859~1916)와 아펜젤러(1858~1902), 로제타홀(1865~1951) 선교사의 묘지도 이곳에 있지요.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




양화진홀,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 안에 있다.

 

절두산 순교성지에 가기 전,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에 먼저 들러봅니다. 문화적 차이일까요? 아니면 저의 선입견일까요? 외국인들이 묻혀 있는 묘원은 마치 공원 같습니다. 작은 언덕 위에 크고 작은 나무들과 여러 모양의 비석들이 어울려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오솔길 같은 산책로가 묘원의 구역을 가르고 묘원을 둘러싸고 있어 산책코스로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종교적인 방문이 아니어도 둘러볼 만합니다.

묘원을 둘러보고 혹 이곳에 묻혀 있는 선교사들의 사연과 그들의 활동이 궁금하다면, 묘원 내 홍보관 양화진홀로 가면 좋습니다. 선교사들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이들이 펼친 선교사역과 한글성경 번역사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고 관련 영상도 볼 수 있습니다.




 

절두산 순교성지




십자가의 길, 절두산 순교성지 안에 조성되어 있다.




한국순교자박물관-1




한국순교자박물관-2

   

선교사 묘원에서 작은 공원을 지나면, 절두산 순교성지입니다. 이 역시 저의 선입관일까요? 절두산 성지에서 느끼는 종교적 무게감은 선교사 묘원에서 느끼는 그것과는 그 단위가 다릅니다. 1866년 병인박해의 그 잔인함과 비장함은 느낄 수 없으나, 경건한 분위기는 단연 최고입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개신교와 달리 성상과 성례, 여러 종교의식을 중시하는 천주교는 확실히 개신교보다 그 종교적 컬러가 진합니다. 손에 묵주를 감고서 기도를 하고, 기도처에 촛불 수백 개를 피우고, 김대건 신부 동상을 향해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이는 신도를 보니 그러합니다.

 

박물관 안으로 오릅니다. 병인박해 100주년을 기념해 1967년에 준공한 건물입니다. 박물관 안에는 천주교 신앙을 지키며 순교했던 27위의 순교성인에 대한 여러 자료와 그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절두산 성지 역시 조경과 정비가 잘 되어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 동상 뒤로는 십자가의 길이 나 있습니다. 신자와 방문객들이 묵상하며 걷는 길입니다. 성지이니 산책로라고 말하면 불경스러운 것일까요? 순례하는 사람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천천히 걷기에 좋습니다. 절두산 성지와 선교사 묘지와 모두 흡연, 음주, 음식물, 애완견은 불가합니다.




 

절두산 성지에서 내려다본 한강




한강에서 바라본 잠두봉-1




한강에서 바라본 잠두봉-2




양화진의 한강 


양화진에 왔으니 한강을 아니 볼 수 없죠. 성지 입구로 다시 나와 계단 위에서 한강을 전망합니다. 왼쪽으로 멀리 여의도가 내려다보이고, 서너 시간 후면 강 서쪽으로 석양이 내려앉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산철교와 강변북로가 강을 죄다 가려버려 아쉽습니다만, 대도시 서울의 없어서는 안 될 실루엣입니다.

 

강변으로 내려갑니다. 강변북로는 벌써 정체가 시작되고 있는데, 강변의 자전거들은 쌩쌩 달립니다. 절두산이 카메라 앵글에 다 들어올 정도로 강 동쪽으로 내려갑니다. 바위의 색이 검붉습니다. 원래 암석 색깔 때문에 그러할텐데, 순교자의 피 때문에 검붉다는 이야기가 나올 법합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가 양화진에 정박하자 서양오랑캐로 더러워진 땅을 천주교 신자의 피로 씻어야 한다.”며 대원군이 서소문 밖의 처형장소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대학살은 시작되었습니다. 절두산의 원래 이름은 잠두봉입니다. 누에의 머리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저렇게 소박한 이름이 절두산이라는 살벌한 이름으로 바뀔지 누가 알았을까요.




 ※  [서울, 추억 #]에 사진과 사연을 소개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번호와 메일로 연락을 주십시오.  서울에서 찍은 모든 옛 사진이 대상입니다. 

 정성스레 취재하여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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