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HOME > 스토리 피드

서촌을 사랑한, 살다간 작가들의 발자취와 함께... 제3부

By 이야기자료실 2013-09-29
4111

스토리텔링 서촌  3

 

누하동 225-1로 향합니다.

 한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지요.

라파엘의 집 골목 맞은편입니다. 노천명시인이 살았던 집입니다.

지금은 다른 이가 살고 있고, 안을 들어가 볼 수도 없습니다.

 

_x254438656 

 

노천명은 19573, 길에서 쓰러져 백혈병 진단을 받은 후 누하동 자택에서 요양하다가 616일 세상을 떠났다.

일찍이 알려진 문재 때문에 일제 말 친일 시를 남기게 돼 인생이 한번 구겨지고, 6·25전쟁 때 피난 가지 못했다가 문우의 강권으로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했다가 평생 부역자로 낙인찍혀 또다시 구겨진 인생. 누하동 집은 이후 노천명 자신을 가둔 감옥이었다.

그런 그녀가 꿈꾸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부산감옥에서 쓴 시가 이름없는 여인입니다. 진정 그녀는 이런 삶을 살고 싶었을까?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나는 이름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지붕에 박넝쿨 올리고/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기차가 지나가버리는 마을/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여우 나는 산골 예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소

 

기구한 역사는 이런 여인을 가만두지 않았다. 마음 여리고 결이 고운 여인을 기억하고 수필로 남긴 글이 있다.

 

노천명과 김홍섭

내가 헌 책방에서 주로 찾는 것은 죽은 사람의 수필집이다. 주로, 청계천 황학동 공릉동이나 수유리 근처까지 갈 때도 있다. 수필집은 그들의 인생이 오롯이 담겨있고 그런 비밀을 내게만 알려주는 것 같아서 좋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라는 시를 쓴 노천명 시인은 내 마음 속의 연인이었다. 그녀가 친일파니 하는 말은 내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나는 지금 그녀의 죽음을 발견하였고, 시인다운 죽음을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수필집 중에 산다는 일이란 제목의 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바람이 분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듣자니 흡사 장마져서 물 내려가는 소리를 낸다. 밤새도록 불었으면 이 아침엔 잠잠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맹렬한 기세다. 도대체 몇 시나 됐는지 모르겠다.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종소리도 들려온다. 바깥은 아직 어둡다. 이 성냥갑 같은 집에서 나는 무엇인지를 기다린다.”

 

노천명 시인의 수필집을 발견한 그 헌 책방에서 오래 전에 죽은 법관 김홍섭님의 수필집을 발견했다. 책들 간에도 인연이 깊은 가보다.

 

그는 사도라고 불릴 만큼 신심이 깊은 사람이었는데, 어느 일요일 그가 교회에 가니까 지난 밤 죽은 교우가 있는데 먼저 가서 도와줬으면 한다는 부탁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서대문 좁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 기울어가는 어떤 집에 도착했다.

함석문 안 쪽으로 손바닥 만한 낡은 주택이 웅크리고 있었다. 작은 마루를 가운데 두고 양 쪽에 어두침침한 방이 있었다.

그 중 한 쪽의 창호지 바른 문을 여니 요 위에 한 여인이 죽어있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외로운 죽음이었다. 방구석에는 앉은뱅이 책상이 있었고, 그 위에 몇 권의 책이 놓여있을 뿐이었다.

 

김홍섭 판사는 그 책들에게 무심히 시선을 던졌다가 죽은 여자가 노천명 시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그 자리에서 죽은 지 몇 시간 되지 않는 노천명 시인과 처음으로 인사를 했고 그녀의 장례를 치러주었다.

그 김홍섭 판사도 이미 저 세상으로 간 지 오래되고 그의 삶은 다시 한 권의 수필집이 되어 선반 위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는 글을 쓴 이가 있다. 그는 또한 이런 글도 썼다.

 

내 영혼의 사랑 노천명 님을 기다리며

.....

아름다운 당신이여,

나는 당신의 사슴 같은 모습을 흑백사진으로나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슬프도록 아름다운 당신의 영혼의 시들을 겨울 밤의 외딴 고가처럼 서늘하게 읽었습니다.

사람이라니,

 내가 아무리 세속에 어울려 살고자 해도 내 영혼이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듯이,

어떤 시대나 어떤 상황에 부딪혀서 마음에 없는 언행처럼 영혼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

님이시여! 그 때 당신은 그 누군가를 기다렸습니다.

성냥갑 같은 서늘한 방에서 창호지 떨리는 소리를 기다렸으며 따뜻한 봄에는 벙어리처럼 문설주에 서서 기다렸습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

지금도 나는 눈을 감고, 눈 오는 겨울밤을 걸어갑니다.

눈 덮인 달밤에 손길이 흰 사람들은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병풍의 사슴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제가 홀로 당신을 기다립니다.

 

, 아름다운 기다림입니다.

 

오늘은 그녀의 정치적 족적을 지우고, 고단한 삶을 살았던 시인 노천명을 만나고 싶습니다.

 김광진과의 사랑과 배신에 얼룩진 삶이 유진오의 이혼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이 여인은 46세의 노처녀로 세상을 떠났다.

 원래 이름은 기선이었으나, 6세 때 홍역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자 하늘의 뜻으로 살아났다해서 천명으로 개명한 그녀를 오늘 제 가슴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조용히 혼자 이 서촌을 걸으며, 목이 긴 사슴을 기다리는 한사람의 기다림에 저도 같이 하고 싶습니다.

 

통인시장 입구가 보입니다. 자하문로 접한 입구 반대편이지요.

통인시장을 가로 질러 걸어갑니다. 하늘을 향해 투명한 지붕을 둘러쓴 통인시장의 명물 기름 떡볶이를 먹으며, 잠시 고단한 다리를 쉬어도 좋지요.

 

통인시장은 일제시대 효자동 인근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위해 공설시장으로 세워진 곳으로,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처럼 입구와 출구가 정해진 공간이 아니라 가게들이 늘어선 사이사이에 여러 골목길이 이어지는 우리나라 전통시장 모습을 하고 있다.

이곳을 지나면 경복궁역에서 올라오는 대로다. 우리은행 효자동 지점이 보인다.

이 건물은 크기는 작아도 본점 건물과 같은 모양이라고 한다.

 

은행 뒤편 골목에 이상이 살았었다.

 

종로구 통인동 154-10번지, 27살의 생애 중 20년을 살았다는 이곳은 지금 공사 중이다.

이상이 이사 간 후 집장사에 의해 지어진 도시형 가옥의 하나로 판명나면서

 이 집은 논란의 와중에 놓였다.

 

_x254605392 

 

 

 

_x254607072 

공사중 이라는 안내문 앞에 서 있자니 마음이 착잡했다.

역사적 가치를 인물에 두느냐, 장소에 두느냐의 갈등일텐데...

이 모든 논란을 뒤로 하고,

오늘은 모더니스트였던 이상(본명 김해경 1910-1937)을 만나보자.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 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릿속에 의례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요.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외 파라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놓소.

가증할 상식의 병이오. (소설 날개 처음 부분 ),

 

과거의 이곳에 살았던 이상과 오늘의 이곳을 걷고 있는 수많은 이상들.

녹녹치 않는 현실에 부평초처럼 떠있는 우리의 발자국이 도처에 남아있다.

제비다방 복합공간으로 만들예정이라는 공사현장을 바라보며 제비다방을 떠올린다.

 제비 다방.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아 보자.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는 이상의 외침이 귓전을 맴돈다.

한국 현대시 최고의 실험적 모더니스트이자 한국 시사 최고의 아방가르드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상은 어두운 식민지 시대에 돌출한 모던 보이다.

그의 등장 자체가 한국 현대 문학 사상 최고의 스캔들이다.

 

알쏭달쏭한 아라비아 숫자와 기하학 기호의 난무,

건축과 의학 전문 용어의 남용,

주문(呪文)과도 같은 해독 불능의 구문으로 이루어진 시들.

자의식 과잉의 인물, 퇴폐적 소재, 악질적인 띄어쓰기의 거부,

 위트와 패러독스로 점철된 국한문 혼용의 소설들.

그의 모더니즘 문학과 비일상적 기행(奇行)들은 이 스캔들의 원소를이룬다.

 

이런 일화가 있다.

처음 오감도가 발표되었을 때, 신문사에서 "오감도(烏瞰圖)""조감도(鳥瞰圖)"의 오자가 아니냐고 물었다.

오감도란 말은 사전에도 나오지 않고 듣도 보도 못한 글자라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신문에 실린 시를 본 독자들 반응은 참담했다.

"무슨 미친 놈의 잠꼬대냐" "무슨 개수작이냐" "당장 신문사에 가서 오감도의 원고 뭉치를 불살라야 한다" "이상이란 작자를 죽여야 한다"

신문사에 격렬한 독자 투고와 항의들이 빗발쳤다.

당대를 훨씬 앞지른 "첨단", 이 정신분열적 언어의 파행에 독자들은 이토록 거부감을 나타냈다.

 

당대 사람들의 의식과 정서로는 수용 불가능했던 시 "오감도". 그러나 당대 사람들에게 모독당한 이 시는 뒷날 구태의 한국 문학과는 차별화된 새로운 모더니즘 문학의 진경을 펼쳐 보인 "앞서간 문학"으로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불멸의 자리에 각인되며 후학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다.

 

뒷날 시인 이승훈은 이상에게서 "반리얼리즘적 태도, 실존의 현기, 추상성, 자아에 대한 회의를 배웠다"고 고백한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거친 20세기의 한국인들은 대단히 불행했다.

지난 세기의 글쟁이들은 우리가 헤쳐 나온 어두운 시대의 위대한 증언자들이다. 그들은 작가라는 불행한 운명에 포박되어 온몸으로한국문학을 일궈냈다.

 

1933년 늦여름 어둑어둑해질 무렵. 백단화(白短靴)에 평생 빗질 한 번 해본 적없는 듯한 봉두 난발, 짙은 갈색 나비 넥타이, 구레나룻에 얼굴빛이 양인(洋人)처럼 창백한 사나이, 중산모를 쓴 키가 여느 사람의 반밖에 되지 않는 꼽추,

키가훌쩍 큰 또 다른 사나이, 이렇게 셋이서 종로를 걸어간다.

 

"어디 곡마단 패가 들어왔나 본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 기묘한 일행을 보고 한 마디씩 던진다.

백구두의 사나이가 갖고 있던 스틱을 들어 공연히 휘휘 돌려대다가 느닷없이 "카카카.!"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스스로 생각해도 일행의 몰골이 우스꽝스러운 까닭이다.

그들이 백천 온천에 갔을 때도 경성에서 곡마단 패가 왔다고 애들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세 사람 가운데 백단화에 구레나룻의 사나이가 바로 이상(李箱.1910~1937)이고, 중산모를 쓴 꼽추는 화가 구본웅이다.

 ‘조선의 로트레크로 비교되는 천재 화가.

구본웅은 세상과 불화했던 이상에게서 비운의 천재를 알아보고 그림으로 그를 남겼고,

이상은 꼽추 구본웅의 찌그러진 가슴에서 타오르는 열정을 보고 시로 남긴,

서로 평생 반려였다

구본웅이 그린 친구 이상의 초상이다.

 

 

_x254764600 

 

  

병약한 이상은 폐결핵 요양 차 구본웅과 함께 백천온천으로 여행을 떠난다.

 

거기서 술집 여급 금홍을 만난다.

"몇 살인구?" "스물 한 살이에요"

 "그럼 내 나이는 몇 살이나 돼 뵈지?"

 "글세, 마흔? 서른 아홉?"

이 때 금홍은 겨우 스물한 살이고,금홍의 눈에 마흔이 넘은 것으로 비치던 이상은 알고 보면 스물세 살이었다.

 

그는 여행에서 돌아오자 백부의 유산으로 청진동 조선광무소 건물 1층을 전세 내어 "제비"다방을 개업한다.

금홍을 불러들여 마담으로 앉히고, 아울러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한다.

 

이상은 "나는 추호의 틀림없는 만 2511개월의 홍안 미소년(紅顔美少年)이다.

그렇건만 나는 노옹(老翁)이다"라고 쓴다.

 

이상은 찰나적인 행복감에 젖었다. "제비"다방은 두 해 만인 19359월 문을 닫았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는 연애까지 유쾌하오"로 시작되는 소설 "날개"는 바로 금홍과의 동거 체험에서 건져낸 작품이다.

 

공사 중이라는 표지판 앞에서 이리저리 서성이며

이상이 수없이 걸었을 이 길의 옛 모습을 그려본다.

오감도의 아해들이 달렸을 골목길들...,

기억의 복원이 어떻게 이루어질까에 대한 기대감, 염려를 뒤로 하고 자하문로 길을 건너 경복궁 서쪽 문 연추문으로 가보자.

 

 연추문 맞은편 보안여관을 보기 위해서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