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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된 천재 이상(李箱)을 찾아서

By 이야기자료실 2013-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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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된 천재 이상(李箱)을 찾아서

서촌에 가면 천재 작가 이상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은행 효자동 지점에서 왼편 골목길로 20여 미터 올라가면 오른 쪽에 이상이 21년간이나 살던 집이 있습니다. 지금은 제비다방을 간판으로 달고 있습니다. 이상은 대한제국이 일본에 의해 멸망하던 1910년에 서울의 사직동에서 이발소를 경영하던 집에서 맏아들로 태어나 27세의 나이로 일본 동경의 한 병원에서 요절한 천재 작가입니다.

  

1926년 보성고보를 졸업하고 1929년에는 서울대 공대의 전신인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건축과 기사로 일했습니다. 분청사기라는 용어를 만든 유명한 미술사가인 고유섭이 보성고보 동창생입니다. 1929년이라면 조선총독부 건물이 경복궁 안에 완공되어 서울 시내에 어디에서도 보이는 웅장한 곳에서 조선사람이라면 몇 명되지도 않는 대단한 정규직 공무원인 셈입니다. 그러나 건축가이기 이전에 이미 1930년 신문에 장편 소석을 발표하는 등 문학 활동을 시작하여 소설, 수필 외에도 미술에도 띄어난 재주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1933년 각혈로 피를 토하는 등 건강이 좋지 못하여 겨우 5년도 채 못다니고 조선총독부를 그만두고 요양차 황해도 백천 온천장으로 떠납니다. 그 곳에서 24살의 문학 청년은 꽃처럼 이쁜 금홍이라는 여인을 만나 서울로 데려와서 살림을 차리고 금홍과 함께 종로에 제비다방을 운영합니다. 이곳에 이태준, 박태원, 김기림 등이 출입하여 이상의 문단 교우가 시작됩니다. 1934년에는 구인회에 가입, 특히 박태원과 친하게 지내서 그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1에 삽화를 그려줍니다. 이상의 대표적인 작품인 날개라던가 오감도는 다 이곳 제비다방과 그 골방에서 금홍과 같이 살던 때의 이야기가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1935년 다방을 폐업하고 이것 저것 손을 대 보았지만 실패하여 빈 털털이가 되었고 1936년 이화여전을 나온 여류 문인 변동림과 결혼했으나 병세가 악화되어 이듬해 혼자 일본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불령선인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한달간 감옥에 갇혀있다가 나왔으나 병세가 더 악화되어 곧이어 병원에서 레몬 향기를 맡고 싶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맙니다.

현재 크게 고치고 있는 이 집은 제비다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실은 제비다방은 교보문고옆 피맛골 초입에 있던 열차식당자리였습니다. 그나마도 재개발로 피맛골이 없어졌으니 이상이 오랫동안 살았던 이곳에 제비다방이 있어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다만 이곳에 오면 암울한 일제 강점기에 억눌린 지식인의 고뇌를 생각하고 한 천재작가의 짧은 생애를 한번 돌아보는 것도 서촌을 유람하면서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니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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