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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그 때의 기억, 형구돌

By 옹홋 2014-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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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그 때의 기억, 형구돌



1866년 프랑스 신부와 천주교 신자들을 참수한 후 프랑스 함대가 서울을 침입하자, 흥선대원군(이하응, 1820~1898)은 서양 오랑캐들에 의해 조선땅이 더럽혀지는 것을 더 이상볼 수 없었습니다.

“서양세력과 내통하는 자들은 모조리 잡아들이라!”


체포령이 떨어지자, 수많은 천주교신자들이 각지에서 붙잡혔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당연히 서양세력과 내통하고 있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천주교신자들을 참수하기엔 절차가 번거로웠습니다. 이에 흥선대원군은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죄인들의 사형집행을 쉽게 할 수 있는 사형도구를 만들도록 하라!”


그리하여 고안된 잔혹한 사형도구가 바로 형구돌입니다. 이 형구돌은 연자방아처럼 크고 둥그런 모양인데, 바위 가운데 구멍이 나 있고 거기에 굵은 밧줄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올가미처럼 된 밧줄을 사람의 목에 걸면 돌 가운데 난 구멍 뒤에서 지렛대를 이용해 죽을때까지 잡아당겨 질식시키는 무자비한 사형도구였습니다. 


절두산 순교성지에는 형구돌이 야외전시장과 형구·형벌체험관 앞에 각각 전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1886년 한불조약으로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기까지 땅 속에 묻혀 있었던 것을 발굴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1964년 충청북도 연풍공소에서 처음 발굴되어, 1974년에절두산 순교성지로 이전해온 것입니다.


형구돌에는 그날의 흔적이 남아 있는 듯 일부에는 붉은 자국이 남아있고 밧줄에는 지금도 검붉은 핏자국이 서려있어, 수많은 천주교신자들이 얼마나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는지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출처 : 서울시 관광스토리텔링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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