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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지 않으면 화해할 수 밖에 없고, 화해를 주장하면 나 라를 파는 것이 된다.

By 옹홋 2014-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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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지 않으면 화해할 수 밖에 없고,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 된다.



19세기 후반 고종의 생부인 흥선대원군은 프랑스 함대가 침략한 병인양요(1866), 미국함대가 침입한 신미양요(1871)를 치르고 나자 더 이상 외국과의 통상을 금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했습니다. 그리고는 종로 네거리와 강화, 동래, 함양, 경주, 부산진 등 전국의 주요 지역에 척화비를 세웠습니다. 그것은 서양 세력이 더 이상 침투하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경고였습니다.


우선 서울에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종로 네거리(종로구 관철동 보신각 부근)에 척화비를 세우고, 다음과 같은 내용을 새겨놓았습니다.

“서양오랑캐가 침입하였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할 수 밖에 없고,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 된다. 우리의 만대자손에게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


그러나 임오군란(1882)이 발생하자, 흥선대원군은 청나라에 납치되었는데, 그 당시 일본공사의 요구로 척화비는 모두 철거되었습니다. 현재 절두산 성지 안에도 모형으로 만든 척화비 하나가 세워져 있습니다. 서양세력이 침투를 거부하고 서양 종교인 천주교인들을 순교하게 만들었던 흥선대원군의 척화비가 절두산 성지 안에 전시되어 있는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라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서울시 관광스토리텔링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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