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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을 사랑한, 살다간 작가들의 발자취와 함께... 제4부

By 이야기자료실 2013-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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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서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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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여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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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돈 없는 예술가들이 상경하여 장기 투숙하였던 공간인 보안여관이다.

 이곳에서 서정주, 김동리, 김달진 등이 모여 동인지를 발행했다.

 

편집인 겸 발행인은 1호가 서정주, 2호는 오장환이 맡았고, 동인지라고는 하지만, 편집인의 후기(後記) “벌써 여기다가 꼭 무슨 빛깔 있는 기치(旗幟)를 달아야 멋인가? 피리를 가졌건 나팔을 가졌건 또 무엇을 가졌건 마음놓고 그는 그의 최선의 진실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무슨 주의를 내걸고 모인 동인(시인부락)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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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여관의 기능은 다하고, 가끔씩 갤러리로 쓰인다고 한다.

귀퉁이에 '예술을 파는 가게'라는 작은 간판이 붙어있다. 예술을 파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

 

오늘은 그들이 쓴 시를 읽으며 당시 그들의 마음을 엿보고 싶다

 

서정주의 문둥이란 시다.

 

해와 하늘빛이/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이 시는 문둥이가 병을 낫게 하려고 애기를 잡아먹고 밤새 울었다는 내용이다.

 

보리밭에 달 뜨면 / 애기 하나 먹고는 전래되는 이야기에 문둥이가 문둥병을 치료하려면 애기의 간을 먹어야한다는 속설이 있다. 이 속설을 믿고 애기를 훔쳐와 달이 뜬 밤에 보리밭에서 애기를 먹었다는 내용으로 어린애를 희생시켜서라도 정상인이 되어 살겠다는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이 드러난다.

 

5행에 불과한 짧은 시지만, 꽃처럼 붉은 피가 배어나는 처절한 울음 앞에서 손끝이 저려온다. 어쩌면 저 문둥이는 한센병을 앓는 환자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 아닐까!

 

오늘, 우리들의 애기는 무엇일까? 마실 수밖에 없는 독배를 앞에 두고 통곡을 가슴에 밀어 넣고 부서져 내리는 한 인간이 떠오른다.

 

오장환의 성벽이다.

세세전대만년성(世世傳代萬年盛)하리라는 성벽은 편협한 야

심처럼 검고 빽빽하거니 그러나 보수는 진보를 허락치 않아 뜨

거운 물 끼얹고 고추가루 뿌리던 성벽은 오래인 휴식에 인제는

이끼와 등넝쿨이 서로 엉키어 면도 않은 터거리처럼 지저분하도다.

 

오장환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제목이기도 한 이 시에서 '성벽'은 보수라는 관념을 사물에 비유하여 형상화한 것이다. 본래 성벽은 바깥에서 성안을 공격하는 것들로부터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하여 돌이나 흙으로 쌓은 것을 말한다.

 

다른 것을 받아들일 너그러움이 없고 생각이 좁으며 한쪽으로 치우친 것을 시인은 보수라고 본다. 보수는 바로 그런 성격의 변화를 요구하는 진보의 공격에 ' 뜨거운 물 끼얹고 고추가루'를 뿌린다.

 

성벽 안에서 진보에 대항하는 행위다. 보수는 그런 방어 행위를 통해 진보의 요구를 막아내면서 오랜 휴식의 기간을 거쳤다. 그 오랜 휴식의 시간은 바로 점점 보수의 성격이 고착화되는 시기이며 변화를 두려워하여 더 이상 발전을 하지 못하는 정체된 시간이기도 하다.

그 휴식의 시간이 지난 현재의 성벽 모습을 시인은 '이끼와 등넝쿨이 서로 엉키어 면도 않은 터거리처럼 지저분하도다' 고 묘사하고 있다.

 

갈등이 있는 초췌한 모습이다. 역사의 정체로 인한 황폐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때가 1936년이다. 일본이 1931년 만주를 점령하고, 1937년 중일 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때이다. 시대을 떠난 인간을 생각할 수 없는 게 아닐까? 당시의 암울한 상황과 겹쳐보면 그들의 발버둥이 이해된다.

 

당시 오장환이 본 보수와 진보의 모습이다.

 지금은 어떤가? 갑자기 보수와 진보란 새의 양 날개와 같다란 말이 떠오른다. 두 날개가 균형을 유지할 때만 날수 있는 건 아닐까.

 

다시 건너온 자하문로를 다시 건너가 보자.

서촌은 예술가들이 숨바꼭질하는 동네다. 술래가 되어 골목길 모퉁이 마다 숨어있는 그들을 찾아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가는 길이 지루하면 류가헌을 살짝 들려도 좋다.

 

한옥 두 채가 나란히 기와지붕을 맞댄 형태의 사진 전문 갤러리로 2010년 문을 열었다. 긴 툇마루와 잔디마당, 사진 책을 넘겨볼 수 있는 아담한 카페가 있어 한옥을 느긋하게 음미하기 좋은 곳이다.

 

우리은행이 보인다. 은행 주차장 옆에 길담서원이 있다.

책이, 문자 매체가 힘을 잃어가는 시대에 인문학의 부활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문을 연 서점이다.

전자매체가 주가 되는 세상에서 서점의 존재이유를 온몸으로 구현해내고 있는 길담에 갈채를 보낸다.

이게 서촌의 매력이 아닐까? 내눈 앞에서 자꾸만 겹쳐지는 두 서점 대오서점과 길담서원이다.

 어제의 서촌과 오늘의 서촌, 이렇게 이어져가는 시간들이 모여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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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역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금천교시장이 있다.

종로구에서 세종마을 음식 문화거리로 만들었다. 종로구 내자동 1번지다.

 

행랑처럼 이어지는 음식점들. 바삐 움직이는 저들의 손을 보라. 그들 가

슴 속에 수많은 얘기들이 담겨있을 것이다.

그 끝은 사직단으로 가는 길과 연결된다.

 

잠깐 멈춰서 길 위쪽을 쳐다보면 SOHO라 쓰인 건물이 보인다. 손호영시인의 집 SO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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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그의 단가를 읽어보지 못했다.

그녀는 한일 문화 교류에 많은 공헌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녀의 딸이 어머니를 기리는 사업을 한다고 한다. 그녀의 딸 역시도 시인이다.

 

이렇게 서촌을 사랑해, 서촌에 살면서 문학의 정신을  이어가는 사람이 있음에 나는 감사한다.

그런 사람이 많을수록 서촌은 더욱 풍요로운 정신을 지닌 동네가 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곳에 살지 않더라도 서촌을 사랑하며, 그 기억을 간직한 사람들에 의해 서촌의 어제가 다시 오늘이 되고, 끝없는 미래로 이어질거라 믿는다.

 

서촌 밖에 살면서 서촌을 노래한 문정희 시인의 시다.

 

중국집의 추억

우리들의 옛동네 효자동에 와서/ 짜장면을 시켜놓고 다꾸앙에 춘장을 찍어먹으며/ 모서리가 깨어진 가난한 추억을 꺼내 보았다./ 텅텅 불어터진 짜장면을 쑤시다가/ 도난당한 추억을 어디에다 신고해야 하나/ 청와대를 잠시 떠올려 보다가/ 우리들은 말없이/ 낡은 중국집을 나왔다.

 

서촌이 더 아름다운 것은 과거의 얘기만 있는 곳이 아니란 점이다.

 역사적 평가를 잠시 접고, 그들이 보여준 인간의 고뇌, 아픔 또 다시 희망을 꿈꾸었던 사람들을 보라. 먼저 간 분들의 삶의 켜들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시를 쓰는 시인이 있고, 시를 쓰면서 바로 그 서촌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곳, 서촌을 걸으며 서촌의 과거뿐 아니라 현재를 만나고 다시 미래를 꿈꾼다.

 

오늘은 서촌을 사랑한 작가들의 얘기를 썼지만, 다음엔 그곳 풍광을 그렸던 조선의 환쟁이와 그곳을 거쳐 간 근 현대 화가들을 만나보고 싶다. 또한, 서촌의 오늘과 내일을 통해 이 마을, 서촌의 변화를 얘기하고 싶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사직단이다. 사직단에 들러 땅의 신을 만나 오늘 걸어 다닌 길을 고하고 집으로 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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