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잠수교, 전쟁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선택 - 한강

SeoulStoryMaster | 2014.02.28 14:32 | 조회 : 3483


6.25 전쟁과 냉전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흔적들이 수도 서울 도심 한복판에 여전히 남아 있다.

전쟁의 흔적들은 우리 곁에서 모르는 사이 우리의 생활로 들어와 함께 해왔다.

 잠수교는 폭격을 피할 뿐 아니라 파괴 후 빨리 복구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지어진 대표적인 다리다. 

한강 다리는 전쟁 상황을 감안한 군사전략적 입장에서 설계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반포대교 아래 건설돼 공중에서 보이지 않고, 교각이 짧아 폭격을 받으면 상판을 빨리 다시 깔 수 있었다. 

한강의 경관을 해친다는 평가를 받던 다리들은 대부분 이런 경우인데, 폭격으로 피해를 입었을 때

가장 빨리 효과적으로 복구할 수 있는 구조를 선택한 결과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산재해 있는 

전쟁과 남북대립의 흔적들을 반포 잠수교에서 느낄 수 있다. 


서울 한강의 잠수교는 1975년 9월에 착공해 이듬해 7월 완공하였다. 

1980년 1월에는 잠수교 위에 2층 교량이 착공되어 2년 후에 완공되었는데, 

이것이 반포대교이다. 반포대교는 한강다리 중 유일한 2층 교량이다. 형태상으로 볼 때, 

우리나라 최초의 복층 교량이며, 다만 처음부터 복층으로 건설된 것은 아니다. 

아래층과 위층이 6년여의 시차를 두고 개통되었다. 


흔히들 잠수교 또는 안보교라고 부르는 1층 다리는 

연장 795m의 4차선(폭 18m), 높이 6.5m의 다리로 건설되었으며 건설비는 28억 6000만원이 투입되었다. 

용산에 주둔해 있던 군부대들과 가장 가까운 이 다리는 6ㆍ25전쟁 당시의 한강인도교와 한강철교 폭파라는

비극적이고 아팠던 경험에 대한 반성 혹은 대안으로 구상되었다. 

그래서 교각도 15m 경간으로 촘촘히 세웠다.


위기 상황에서의 용이한 복구를 염두에 둔 설계이다. 

이 다리는 한때 지하 터널로도 구상되었다. 이런 이유로 안보교(安保橋)라는 특이한 별칭이 붙여졌으며, 

평상시에는 수면 2m 정도의 높이로 양쪽 강안의 고수부지(高水敷地)와 수평을 이루지만 

홍수 시에는 물속에 잠기게 되기에 잠수교(潛水橋)라 하였던 것이다.


필요할 경우 다리 가운데(제21, 22번 교각) 15m를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바지선 등이 통과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한때 장안의 명물로 각광을 받았다. 일종의 가동교(可動橋)로서 승개(昇開) 장치를 설치했다. 

2층 다리는 1980년 1월에 착공하여 1982년 6월 25일 준공했다.




원찬자료

1.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서울지명사전』, 서울시저, 2009

2.「노컷뉴스」(2013년 6월 25일), “우리가 몰랐던 서울 도심 속 6.25와 냉전의 흔적”

3.「건설경제」(2011년 4월 5일), “잠수교ㆍ반포대교- 2층 다리로”


활용

잠수교 이야기를 오디오가이드북과 이야기패널로 제작하여 활용한다.


사진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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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보22 2016-11-19 오후 4:15:55

    잠수교 물이차면 잠겨 있는 잠수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