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문래동 철부지 형성과정 - 영단 주택의 형태와 현재 - 영등포구

SeoulStoryMaster | 2014.01.15 19:53 | 조회 : 6617

 

영단주택단지와 영단슈퍼의 모습

 

문래, 일제 강점기에 건립된 최초의 계획도시
일제강점기, 일제는 남산 기슭에 조선신궁과 헌병대 등 식민통치를 위한 주요 시설을 세웠고,

그 주변으로 일식주택들을 집중적으로 건설하였다.

 

1941년 7월, 조선주택영단(朝鮮住宅營團)을 설립, 영등포 문래동과 대방동,

상도동 등에 영단주택을 대규모 공급하였다.

 

이것은 최초의 근대식 계획도시가 되었는데,

당시 주택, 병원, 도로 등 전국 17개 지역 6만호 주택 가구가 4개년 개발계획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문래동은 공장과 철공소, 주택가를 중심으로 한 산업 도시의 기능 뿐 아니라

안양천, 도림천 등 한강을 포괄하는 지리적 이점 등으로 인해 계획도시로서 특히 유용함을 갖추고 있었다.

더불어 군수 물자 관리, 형무소, 화장터 같은 특수 기능 모두를 포함하여 다각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었다.


해방 후 이러한 계획도시 형태는 현재 대한주택공사의 전신으로써 자리를 잡았으며,

조선주택영단에서 지은 노동자 주택이 현재 문래동 500여 채에 유일하게 남아 있다.

이곳은 여전히 주민들이 살며 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한국 근현대 역사의 중요한 가치로 손꼽히고 있으나 현재 재개발 계획의 한가운데 놓여있다.

조선주택영단, 이른바 영단주택(營團住宅)의 설립목적은 이른바 전시형(戰時型) 주택보급으로써

최소한의 생활공간을 확보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조성된 영등포 지구의 문래동, 번대방지구의 대방동,

그리고 상도동과 신길동, 돈암동에 대규모 영단주택이 들어섰으며

이곳에는 일본인 관리 뿐 아니라 공단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격자형으로 집과 도로가 들어서고 날 자리가 정확히 구분된 이 곳은

주택과 녹지, 병원, 목욕탕, 상점 등의 시설이 계획적으로 건립되었다.

 

이곳은 갑, 을, 병, 정, 무의 5개 단위 6, 8, 10, 15, 20평 형의 계층별 주택으로 만들어졌다.

보통 15, 20평수는 일본인 관리가 분양, 그 이하의 작은 평수는

한국인 노무자들을 위해 임대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표준설계 작성지침에 보면 주택의 질을 중요시하고,

대지는 건평의 3배 이상으로 하고, 하루 4시간이상 채광이 가능하도록 하였으며

총독부의 방침에 따라 외관과 내용 모두를 일본식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일본식 목재와 주택형태는한국의 기후와 어울리지 않아

방 한 개는 무연탄을 사용하는 개량 온돌로 만들어져 일본식에 한식을 가미한 형태로 완성되었다.

이러한 영단주택은 마당을 정원으로 꾸미고 현관을 통해 복도로 진입하는 일본식이었으며

갑, 을, 병에는 내부 욕실이, 정, 무의 작은 평형의 경우 50호 단위로 공동목욕탕이 설치되어 있었다.

광복 후에도 우리나라 근대 주거건축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60 ~ 70년대 한국 산업화의 중심으로써 각종 공장과 사택들이 대규모로 들어서며,

문래동 영단주택단지는 용도에 맞게 변형되어 공장 노동자들의 들어서기 시작되었다.

현재 역시 중소규모의 상업건물, 공업사, 창고 등으로 변형 이용되고 있으며

이곳의 랜드마크처럼 자리하는 ‘영단슈퍼’에서 과거 영단주택의 흔적을 찾을 수 있으나

재개발 계획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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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보22 2016-11-19 오후 7:48:53

    문래동이 어딘지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