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당산동 일대의 과거와 현재 - 영등포구

SeoulStoryMaster | 2014.02.28 15:53 | 조회 : 6318


당산동이나 양평동 일대엔 예부터 갈대가 우거진 곳이 많았다. 지금의 당산1동 동사무소 일대 역시 갈대밭으로, 이곳에 새로운 마을이 형성되면서 마을 이름을 ‘새말’이라 하게 되었다. 지금 이 곳의 ‘새말목욕탕’ 등의 상호가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리고 그 일대는 또 모랫벌이기도 해서 ‘새말모래톱’이라 불리 우기도 했다. 이곳에 모래나 갈대가 많았던 것은 그 동쪽으로 한강의 샛강이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하나의 샛강에 불과하고 또 물도 흐르지 않고 있으나 옛날에는 이 샛강이 한강의 본류(本流)라고 할 만큼 큰 강이었다. 그 곳에서 북쪽으로 올라간 자리, 지금의 당산동 2가에는 집이 세 채밖에 없었다는 ‘세집네’마을이 있었다. 현재의 당산동 2가 70번지 일대에는 집이 2백 채나 있었다는 ‘이백채’ 마을이 있었고, 그 위쪽에 마을이 무척 커서 이름 붙었다는 ‘오백채’라는 마을도 있었다. 근처에 참나무가 몇 그루 서 있었다는 ‘참나무밭들’이란 마을도 있었고, 지금의 당산동과 양평동 사이에는 ‘사이의 마을’이란 뜻의 ‘샛말’이라는 마을도 있었다. 또한 일제 강점기 많은 마을들이 형성되면서 ‘사택’이란 이름을 단 마을도 많았다. 옛날 ‘조선피혁(朝鮮皮革)’이라는 회사가 있었던 곳에 ‘남부사택’이라는 마을이 있었고, 공항로 가까이에는 ‘구락부사택’이라는 마을도 있었다.


당산동과 양평동 일대는 워낙 지대가 낮아서 군데군데 물이 괸 곳이 많았다. 지금의 당산동1가 시장 입구를 전에는 ‘웅뎅이터’라 했는데, 일제 때 이 근처를 지나는 철도를 부설할 때 이곳의 흙을 많이 파 가는 바람에 지역이 낮아져 물이 괴게 되어 이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지금의 당산동 104번지 일대엔 ‘가막마을’이 있었는데, 이 이름은 벽돌 공장이 있어서 붙여진 것이다. 6.25 때 이곳도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 지금의 당산동 2가 현대아파트 맞은편인 진로창고 자리는 폭격으로 많은 집들이 불에 타고 다시 마을이 들어서면서 ‘불탄자리’라 했다.


양평동은 한강 옛 나룻터의 하나인 양화도 나루터 근처 벌판에 이루어진 마을이란 뜻으로 양화도의 ‘양’자와 벌판의 ‘평’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일대는 많은 변화를 겪은 후에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되었으며, 지금은 이곳에 여러 지하철 노선들이 지나고 바둑판 모양의 길과 갖가지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영등포 생활권의 중심 지역으로 크게 발돋움하고 있지만, 그 옛날에는 갈대밭과 모래펄이 있었던, 놀랍도록 다른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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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보22 2016-11-18 오전 11:51:18

    영등포는 공구가 유명한데.. 지금도 활성화 도었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