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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70-80 넥타이족들의 추억과 명소 - 추억

김헌식 | 2017.05.19 19:34 | 조회 : 53

 

<사진: 1980년대 넥타이족들은 사회 변화 주축으로 등장>  *민주화기념사업회 사진


종로에 아직 남아 있는 피맛골은 시대와 세대를 넘어 항상 넥타이족들이 즐겨 찾는 공간이었다. 이렇게 보편적으로 찾는 명소가 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들의 취향이 달라져 왔다. 1970년대와 1980년대는 문화적 취향의 대중화 시대이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이끌어간 것은 넥타이족이라고 할 수 있다.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은 경제적인 자립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문화공간소비의 중심은 아니었다.


좀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70년대 신문화를 상징하는 3가지를 든다면 통기타, 청바지, 생맥주다. 통기타 음악으로 대변되는 포크송을 듣기위해 종로 무교동이나 쉘부르와 세시봉 등 명동의 음악 감상실로 모였다. 본격적인 산업화가 이뤄진 1970년대가 되면서 넥타이 부대들이 즐겨 찾는 곳이 확대된다.  하나의 넥타이문화 공간이 형성된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넥타이족들이 노동 뒤에 여흥과 휴식을 위해서는 찾는 공간도 다양화된다. 우선 포장마차의 변화를 들 수 있다. 50-60년대 포장마차는 광목으로 얼기설기 가린 상태에서 잔술을 팔았지만 7-80년대가 되면 비닐천막을 넘어 튼튼한 구조물로 바뀌었다. 여기에 막걸리 소주 맥주를 팔았으며 안주는 더 다양화되었다. 특히 길싸롱은 샐러리맨들이 많은 여의도에 집중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직도 저녁이 되면 여의도에는 지나가는 넥타이족들을 붙잡는다.


1970년대는 맥주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고 서양식 맥주집이 성업을 이뤘다. 술과 음식을 먹는 것만이 아니라 노래와 춤을 같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바로 그것이 스텐드바였다. 본래 스텐드바가 한국에 등장한 것은 1930년대지만 1970년대 본격적으로 유행했다. 공간의 형식은 앞에서 음악연주나 노래를 부르면 테이블에서 그것을 보거나 들으며 술을 먹거나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고고장이라고 하던 나이트클럽이 유행한 것도 1970년대라고 할 수 있다. 이때 고고장에서는 직접 춤을 추는 것이 매력이었다. 직접 밴드 음악연주에 맞추어 춤을 추다보면 자정 통금 시간을 넘겨 낭패를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70년대 성탄전야와 연말은 연중 유일하게 통행금지가 해제가 되었는데 이때 서울 명동과 충무로 종로통 일대는 ‘해방의 공간’이었다. 당시 최초의 고고클럽이라고 하는 닐바나를 비롯해 팽고팽고, 우산속, 코파카바나, 마이하우스, 투모로우, 센트럴 등의 고고장이 성업이었다.


무교동낙지골목의 원두막, 선비촌, 태평양, 아엠유 등은 흙바닥에 나무탁자 정도의 허름한 고고주막들이었지만 부담 없이 그룹사운드의 라이브를 들을 수 있었다. 올나이트할 수 있는 타워호텔과 풍전나이트 등은 돈이 있어야 찾아질 수 있었다. 당시 고고 주막도 있었다. ‘고고 미팅’이란 게 성행했는데 회비를 갹출해서 주로 학교주변의 음악다방을 빌린 뒤 고고리듬에 맞춰 미팅을 겸한 낭만파티였다.



1980년대가 되면 정치나 경제적 상황은 넥타이족들의 문화공간에도 변화를 주기 시작한다. 통금시간이 사라지면서 제약이 덜해졌다. 새벽까지 영업을 연장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면서 소비력이 증가하시 시작했다. 이 때문에 고급 술집을 지향하는 룸살롱이 크게 증가했다. 이 때문에 포장마차 등은 상대적으로 비주류로 밀려난다. 주류의 소비 품목도 바뀐다. 막걸리와 소주에서 맥주 그리고 양주의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다. 나이트클럽의 형태도 고고장에서 디스코텍으로 바뀐다. 디스코텍은 디스코 음악이 크게 유행을 하면서 등장을 했는데 고고장과 달리 반드시 밴드가 등장할 필요는 없었다. 음향 시설의 발달과  댄스 음악이 크게 유행한 것과 비례했다.


이때만 해도 아직 다방세대에 가까웠다. 식사를 하고서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이성도 다방에서 만났다. 이런 다방 세대는 디스코텍이나 고고장에서 처음 보는 이성과의 즉석 만남이 이뤄졌다. 90년대 이후 카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였고 이때 여러 디자인의 실내 공간을 통해 세련된 트렌드를 이루기도 했다. 카페 세대는 나이트클럽을 주로 이용하게 웨이터를 통해 '부킹'을 했다. 부비부비는 남녀 간의 춤이 문화적 현상이기도 했다.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 클럽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는 문화 복합공간으로 진화한 커피전문점이 문전성시를 이루기 시작한다. 전국적으로 같은 디자인이나 시스템을 갖춘 카페 전문점이 지배했다. 영화관도 마찬가지다. 영화관은 지금이나 그때나 연인들의 장소라고 할 수가 있다.



1970-80년대는 단관 개봉관이었다. 종로에는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극장, 중구에는 대한극장, 명보 극장등이 많이 찾는 영화관이었다. 영화관에서는 주로 영화를 보았을 뿐이며, 다른 문화적 공간과 분리되어 있다. 지금은 멀티플렉스 일색이라고 할 수 있고 타 문화적 활동을 병행하고 직장인들끼리 단체 관람을 하는 경향이 늘었다. 다만 단관 극장에서는 같은 영화를 반복적으로 볼 수가 있었다. 1970-80년대 종로의 종로서적과 교보문고, 홍익문고 등은 직장인들이 주로 찾는 대형 서점이었다. 지금은 책을 많이 읽지 않지만 그때는 항상 출퇴근 시간에 읽을만한 책을 지니는 문화가 있었다. 퇴근길에 헌책도 많이 방문하는 서점이었다. 퇴근 시간에 맞춰 새로 들어온 책을 진열하기도 했다. 신촌이나 청계천 헌책방 골목은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스마트 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일반 서점이나 헌책방에서 약속을 정하는 일은 많이 줄어들었다.


각 시기나 세대별로 확연하게 문화적 취향이나 공간이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겹치기도 하고 연장선상에 있기도 하다. 1970-80년대는 아날로그 정서를 많이 담고 있다.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성이 존재하고 있었다. 디지털 문화가 있고 파편적이 감각적이며 순간적인 즐거움을 넘어 시간적 여운과 인간적인 친화성이 존재했다. 그런 점들이 있기 때문에 LP카페가 다시금 많이 부활하고 있는 것과 같이 끊임없이 70-80년대 문화 코드들을 소환하고 있다. 그러한 문화적 취향의 공간이 제대로 보전이 안되어 아쉬운 점이 있다.


글/김헌식(문화콘텐츠학 박사,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초빙 교수) 1974년생

저서: 대중문화 심리읽기, 대중문화로 읽는 한국 사회, 경제변화와 문화트렌드 등

블로그 : http://codess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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