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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제 추억이 된 장충동 - 공간

방미영교수 | 2017.07.14 10:25 | 조회 : 178


 얼마 전 뷰티 관련 행사에 초대받아 장충체육관을 다녀왔다. 장충동에 대한 특별한 추억 때문에 행사가 시작되는 시간보다 일찍 서둘러 연구실을 나섰다. 장충체육관은 2012년 새 단장에 들어가 2015년 새롭게 개장하면서 지하철역과 연계를 했다는 보도는 접했었다. 남산2호터널에서 나와서 장충체육관을 지나 학교를 가면서도 새 단장한 장충체육관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던 터라 이번 기회에 오래간만에 지인들도 만나고 뷰티산업 관련 콘텐츠도 봐야겠다는 생각에 선뜻 초대에 응했다.


 지금은 각종 시설들이 공연장, 음악당, 전시장 등 분야별 특성에 맞게 세워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민들의 건강과 다양한 삶의 질 제고를 위해 크고 작은 실내외 체육관들이 건립되어지고 있다. 최근 고척스카이돔에 이어 강남구 일원동 탄천물재생센터 복개공원에 건립 된 에코실내체육관도 그동안 님비시설로 갈등을 겪은 지역주민들의 건강과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지역 랜드 마크가 되었다. 그러나 60, 70년대에는 서울운동장과 장충체육관이 서울시민들의 문화예술의 대부분을 담당해야 했다. 동대문운동장으로 이름이 바뀐 서울운동장과는 달리 1963년에 준공된 장충체육관은 국내 최초 종합실내체육관으로 당시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장충체육관에 세워졌던 커다란 수출의 날 기념탑이다. 실내체육관으로 각종 경기를 하던 장춘체육관에 어느 날 커다란 글씨가 쓰인 높은 탑이 세워졌고, 탑이 세워진 다음 날은 까만 승용차들이 줄지어 장춘체육관을 향해 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까만 승용차를 탄 사람들 때문에 장충체육관이 특별히 기억되는 것만은 아니다. 김일 선수의 박치기를 보려고 몰려드는 인파와 미스코리아선발대회를 보려고 밀려드는 인파는 장충단 공원 앞 분수대와 태극당 빵집 앞까지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북적대니 상인들로 넘쳐났다. 



 그중에 제일 시선이 갔던 것은 삼각형 모양의 옥수수 빵과 술떡을 파는 수레와 커다란 옷핀으로 초장을 찍어 먹는 해삼과 멍게를 파는 수레였다. 그리고 또 한 군데는 사람들이 겹겹이 싸여있어 도저히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어 포복자세로 겨우 앞자리를 차지해 보았던 물방개 뽑기였다. 물방개가 가는 방향에 상품을 놓고 그쪽 방향으로 오라고 서로 물방개를 불러대느라 가장 시끌벅적한 수레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인형 뽑기와 같은 오락거리였다. 가끔 퇴근해 오시는 아버지를 졸라 물방개 뽑기와 멍게를 초장에 찍어 먹으면서 장충동에 살고 있음을 무척 신나했던 유년기였다. 지금도 식구들이 모이면 그 때 멍게 한 조각 가지고 돌려가면서 초장을 찍어 먹던 일로 웃음을 터뜨리곤 한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새콤달콤한 초장처럼 지나고 나니 재미가 추억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장충동 공원은 이제 한적한 산책로가 되었다.


 ‘먹거리’, ‘재미’ ‘오락(체험)’ 등은 사람을 끌어 모이게 하는 콘텐츠의 중요한 요소다. 그 중에서도 으뜸은 ‘재미’ 요소다. 요즘 학생들도 재미가 없으면 두 번 다시 콘텐츠를 이용하지 않는다. 재미가 있어야 시간을 내서 경험하는 열정을 쏟는다. 나 또한 장충체육관과 장충단 공원이 재미가 없었다면 이토록 강렬한 추억이 지배하지 못했을 것이다. 장충단 공원과 국립극장 그리고 자유센터를 거쳐 장충동과 신당동의 경계인 남산성곽까지 매미와 잠자리를 잡으러 하루 종일 뛰어 다녔던 유년의 시간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골아이의 감성을 안겨주었다. 도시의 아이들로 자라기를 바라며 전라남도 순천에서 서울로 상경한 부모님의 뜻과는 달리 우리 자식들은 장충동에서 시골아이가 되어 갔다.


 그러나 다시 가본 장충체육관과 장충단 공원은 낯선 공간처럼 느껴졌다. 온 국민이 사랑한 레슬링과 복싱의 함성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형 가수들의 콘서트와 마당놀이 등 문화예술 행사도 더 좋은 시설과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소로 이동 한지 오래되었다. 문화예술의 중심 중구가 충무로 영화의 명성을 한순간 부산 등지로 뺏기고 충무로영화의 전성기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고심하는 것처럼 문화예술 그리고 스포츠의 중심지였던 장충동도 이제 그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장충동은 민족의 비극적 역사인 명성왕후 시해 사건 때 순국한 분들을 기리는 사당이 있고, 수표교, 승정전 등 문화재와 3.1운동기념비가 있는 애국애족 공원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나는 가끔씩 남산 제2터널 위 국립극장으로 올라가는 길 가에 서 있는 유관순 열사 동상 앞에서 빨간 옷을 입고 찍었던 사진을 보면서 아름다운 시골아이의 추억을 떠올리며 작은 미소를 짓곤 한다. 



     방미영 (房美影)  / 서경대 문화콘텐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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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미영교수
  • drea**** 2017-07-21 오후 9:57:23

    뻔대기와 뽑기 아이스께끼 색소빙수 도 그시절 단골디저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