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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스토리가 만난 사람]중고시계 도매상에서 헌책방주인으로, ‘레트로’의 숲을 만들다 - 사람

손정수 | 2017.05.12 23:19 | 조회 : 252

 

“우유 두 개만 주슈.”
“잠깐만요, 아, 없다, 없다. 이따 세 시 넘어서 오세요.”


머리카락이 뽀글뽀글한 한 아주머니가 우유를 달라고 하자 남승민(40) 씨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태원에 있는 책방 디스레트로라이프(This Retro Life)는 우유 가게 바로 옆에 있습니다. 우유 가게 손님들은 주인이 자리를 비웠을 때 가끔 디스레트로라이프의 주인인 남승민 씨에게 우유를 사 가곤 합니다.


디스레트로라이프는 헌책을 파는 곳입니다. 하지만 보통의 헌책방과는 다릅니다. 헌책을 포함한 과거의 어떤 물건들, 스테레오, 시계, 턴테이블, LP 등을 함께 팔고 있기 때문이죠. 남승민 씨는 이 물건들을 통칭해 ‘레트로(Retro)’라고 붙였다고 합니다. 디스레트로라이프는 이미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는’ 책방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모르는 분들을 위해 그곳을 소개하고자 남승민 씨를 만났습니다.


●희귀한 책들을 싸게 파는 책방


- 디스레트로라이프가 80,90을 의미한다고요.


책방 이름치고는 길고 어렵죠. 80, 90년대 제작된 물건들을 판매한다는 느낌으로 열었어요. 절판된 책만 팔아요. 학창시절에 책을 많이 읽었어요. 당시 선배들이 추천해준 책이나 직접 읽으면서 참 좋다고 생각된 것, 책을 수집할 만큼 아꼈던 작가들의 흔적 등을 모았죠. 한 2000권 정도 되는 것 같아요. 희귀한 책들을 싸게 팔고 있어요.


- 왜 헌책인가요.


과거가 좋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에요. 원래 시계 파는 일을 했었어요. 신상 시계가 아닌 오래된 중고 시계요. 시계를 수집도 하고, 판매도 했죠. 시계에 빠졌을 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 시계를 어떤 사람이 어떤 목적으로 찼을까’ ‘중산층이었을까, 노동자였을까’ 옛 물건들의 사용법을 익히다 보면 그 시점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책도 마찬가지죠. 화자의 시점으로 간접체험을 하게 되잖아요. 옛것과 책의 공통점은 상상력을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해요.


-싸지만 버리기 아까운 책을 고르신다고요.


청계천, 황학동 같은 시장에서 직접 발품을 팔아서 책을 골라요. 황학동에 가면 천 원짜리 책이 많아요. 시장이나 노점에서 싸지만 “아깝다”고 생각되는 책을 사와요.


- 저작권법에 걸리는 책은 없나요.


1980~90년대에는 저작권법이 확립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굉장히 다양한 책들이 나왔죠. 원서를 갖다가 출판사들이 번역자한테 맡겨서 그냥 냈고 여기 그런 책들이 조금 있어요.


●언덕이 있고 자유로운 이태원



- 이태원에 책방을 낸 이유가 뭔가요.


월세도 싸고, 거리가 자유로워 보였어요. 공기의 느낌이요. 동네에 언덕도 있죠. 그래서 이태원에 “가게를 열어볼까?” 하며 시작했고, 연 지 2년이 넘었어요. 당시는 프리마켓이 활성화됐을 때라 반응이 좋았어요. 지금은 여러 사회 문제가 맞물리면서 소비가 줄고 유동인구가 많이 감소했죠.


- 이태원 책방길이 주는 의미가 있나요.


의미라기보다는, 혹시 해방촌에 있는 책방 <고요서사>라고 아세요? 그곳 주인장이랑 친해서 그곳에 책을 몇 권 갖다 놓았어요. <고요서사>는 새로 출간된 책 중에서 문학성 높은 책을 파는 곳이에요. 그곳 한쪽에 작은 부스를 만들었어요. ‘잇다’ 아카데미에도 있어요. 그곳엔 외국 시, 우리나라 시인 중에 좋은 평가를 받는 시인들, 꾸준히 찾는 시인들, 시집들 보여주고 있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책방



- 주로 어떤 손님이 오나요.


처음 오픈했을 때는 손님들이 우연히 지나가다 ‘책이 있네’ 하며 들어오셨어요. 그런데  책 내용이 어려우니까 그냥 나가시더라고요. 그러다 한 분 한 분이 단골이 되더군요. 평론가나 번역자, 시인 같은 분들이 많고, 새로 책을 내야 하는 편집자분들이 기존에 소개된 책이 있나 조사하러도 오세요. 2년 동안 꾸준히 찾아오시고, 입소문을 내주시더군요.


- 외국이나 한국의 다른 곳에도 비슷한 책방이 있을까요.


글쎄요. 아마 없을 것 같아요. 어느 누가 ‘레트로’란 이름으로 헌책과 LP와 스테레오를 한곳에 모아서 팔겠어요? 또, 저는 SNS상으로 책을 구해달라는 분들이 꽤 있어요. 지금처럼 책방을 운영하면서, 그런 분들 책 찾아드리고, 그런 것들 찾으러 다니려 해요. 이 책방이 진입장벽이 좀 높긴 해요. 젊은 분들, 현재 대학생인 분들이 책을 손쉽게 고를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니까요. 대신 1980~90년대 삼촌뻘이 많이 읽었던 책들, 작가들, 이를테면 밀란 쿤데라 같은. 그런 작가들의 선집을 제공할 수 있죠.


- 단골이 많아서 책을 추천해달라는 말씀은 안 하시겠어요.


그렇지 않아요. 추천해드리기도 하죠. 제가 좋아하는 책 위주로 추천해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책들


- 이곳에만 있는 책이 있다고요.


네. 나카카미 겐지라는 일본 소설가 책이요. 가라타니 고진이 최고의 소설가라고 이름 붙였죠. 봉선화와 고목탄 두 권이 있어요. 일본판 포크너라고 생각하면 돼요. 또,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죠. 마틴 가드너라는 학자가 주석을 달았어요. 이 책은 판본이 많은데 구절구절별로 보충설명 같은 주석이 달려 있어요. 이밖에도 많아요, 아서 클라크나 로알드 달의 책, 스타트렉 시리즈(3권) 등이죠. 영화로 만들어졌지만 원저작자가 있는 책이죠. 모두 국내 저작권 개념이 희미했을 때 나온 책들이에요. 앞으로도 이런 책들을 많은 독자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싶어요.


남승민 씨는 아담하지만 '레트로'가 풍요로운 자신의 숲을 완성해 가고 있었다. 대형서점같이 때깔이 반짝이진 않지만, 서울 어느 한 곳에 없으면 서운한 느낌이 들 법한 존재감 있는 공간이다. 그곳을 함께 즐기는 독자도 점점 늘어갈 것이다.


▶주인장이 추천하는 책은 뭘까?


― 주인장이 서평 연재하는 잡지 '악스트 AXT' 
“번역가와 소설가가 만드는 순수 문학 잡지요. 제가 서평을 연재해요. 시계 에세이를 써요. 5월 콘셉트는 사물 에세이인데, 문학성에서 약간 벗어나 사물에 관해 편하게 썼어요.”


― 위대한 개츠비(김욱동 번역) 
“위대한 개츠비는 너무 유명해서, 이 화자에 익숙해지면 되게 재밌게 읽을 수 있죠.”


― 구토
“사르트르는 철학자로 위상이 더 높지만 제 생각에는 현대소설에 미친 영향이 더 큰 것 같아요”


― 작가일기

“예전에 푸른숲에서 나온 책이죠. 소설가를 몇 명이 쓴 짧은 글들이 모여 있어요. 저는 이성복 작가를 좋아하는데, 이성복의 아포리즘이 실려 있어요. 좋아하는 작가들의 젊은 시절의 사진도 볼 수 있죠.”


▸ 주소: 용산구 우사단로10길 82
▸ 전화번호 : 010-2806-8492
▸ 이용시간 : 수요일~일요일 14:00~20:00 월요일, 화요일 휴무

▸ 도서 신청 : 디스레트로라이프 인스타그램


▸ 찾아가는 법 : 지하철 이태원 나역 정류장 3번 출구에서 내린 뒤 우사단로를 따라오면 보광초교가 나와요. 그곳을 지나 우사단로 골목길을 따라 고불고불 들어갑니다. 1층에 있어요.


▶  서울스토리 연관 콘텐츠는?


서로 다르지만 모두 소중한, 이태원 책방길
www.seoulstory.kr/story/album/0/7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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